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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애리 Jul 03. 2022

전시라는 스토리 만들기 (1)

재미없어서 책에는 담지 않았습니다만

사람들은 내가 전시 기획 때문에 바쁘다고 하면 열에 다섯은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냥 진열장에다 유물 놓고, 벽에다가 그림 걸면 되는 것 아냐?


그러면 나는 펄쩍 뛰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전시를 만드는 일은 그것보다는 더 복잡하고 힘든 일이라고 설명한다. 전시 기획이 얼마나 창의적인 일이며 그래서 아이디어를 짜낸다고 가끔씩은 머리카락이 다 빠질 것 같다는 반쯤은 우는 소리까지.


평소 나도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은 다 만만하게 보곤 했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냥 벽에다 그림걸기’는 그냥 물건 진열일 뿐이다.


과거에 대저택의 주인이 자신의 보물을 진열해 놓고 자랑하던 시절에야 그리 했겠지만 하지만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가게에 파는 물건 조차 시리즈별로, 컬렉션별로 짜임새를 고려하여 진열한다.


그러니까 전시기획이 단순히 ‘벽에 그림 걸기’가 아니며 생각보다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내 말은 진짜다.





잘 된 전시에는 주제에 따라 체계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있다. 그 스토리 라인이 어찌나 만족스러운지 전시 동선에 따라서 여러 전시공간들을 오가며 걷다보면 정신적 만족감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내 경우에는 질투까지 살짝 느껴지는데, 있지도 않은 흠을 잡고 싶은 마음 1%와 함께 이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의 창의력을 훔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에 스토리가 필요한 이유는 늘 똑같은 작품이나 유물을 전시하다보면 재미없고 집중이 안 되기 때문이다.


사람의 뇌는 같은 것이라도 이야기의 흐름 속에 있는 것을 더 잘 기억한다. 그러니까 고등학교 때 원소주기율표를 외울 때나 역사적 사실을 외울 때도 이야기를 만들어서 외우면 더 잘 외워지는 것이다. 때문에 기억에 남는 전시를 만들면서 동시에 작품이나 유물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는 스토리가 필요하다.


소장품 전시이거나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유물이나 작가의 전시라면 더 그렇다.


늘 보는 그 밥에 그 나물


이라는 말이 안 나오려면, 끊임없이 유물이나 작품을 새로 정리하고 재정의해야만 한다. 그리고 신선한 시각으로 바라본 재미있는 스토리 안에 그것을 배치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들에게 ‘이런 각도에서 보니까 더 신기하지?’하고 보여줘야 한다.



내가 지금까지도 최고로 꼽는 전시는 어느 미술관에서 보았던 인상파 기획전시이다.


말 그대로 ‘나 저 그림 알아’라고 말할만한 인상파 작가들의 작품들을 대거 전시하고 있어서 어찌보면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를 전시였다. 그런데 이 전시에서는 그 시대의 패션에 초점을 맞췄다. 그림 속 사람들이 입고 있는 의상과 소품을 함께 전시하고, 화려한 사교장소의 풍경을 공간에 재현하며, 전시실 안에 만들어진 파리의 공원 풍경 곳곳에 산책하는 사람들을 담은 인상파 작품들을 숨겨놓았다.


이렇게까지 하진 않더라도 전시에는 주제가 있고 공간 통일된 흐름이 있다. 그게 없다면 적어도 시대순 흐름이라도 하는 게 예의다. 아마도 그래서 전시 기획 교과서에는 충분한 연구를 통해서 작품이나 유물 전체를 이해한 다음에야 전시를 해야 한다고 하나보다. 수많은 소장품이나 새로운 작품을 선택하고 그것에 맞게 제목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주제가 필요할 테니까.





나는 전시 기획에서 주제를 구성하고 스토리를 만드는 부분을 가장 좋아한다.


과묵해보이지만 사실 나는 수다쟁이이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하루 종일이라도 이야기를 떠들어댈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들어 내거나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마음대로 상상하는 것인데, 그러다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대체로 사람들이 관심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나는 입으로 떠드는 대신에 글을 쓰면서 말하고 싶은 욕망을 풀어내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큐레이터 세계에서 10년차이지만 그 훨씬 전에 나는 스토리텔러였다. 큐레이터가 되기 훨씬 전부터 나는 매일매일 강박적으로 일기를 써왔으며 자잘한 글을 써서 내고 그보다 긴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그런데 전시 기획을 하면서, 나는 전시를 통해서도 ‘이야기 만들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신세계였다. 글쓰기와 차이가 있다면 전시는 3D라는 것이다.




1. 소장품 전시



소장품 전시를 연다면, 제일 먼저 나는 수장고에서 소장품을 고를 준비를 한다.


자, 이번에는 어느 용사님이 퀘스트에 참여하시겠어요?


나는 작품 리스트를 보면서 주제에 맞는 소장품을 고른다. 전시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소장품들이 골라졌지만 상관없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서 차차 추려낼 예정이다. 상태가 좋지 못하거나 크기가 안 맞거나 다른 소장품과 조화를 깨는 애매한 소장품은 아쉽지만 이번 퀘스트에 참여할 수 없다.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승부의 세계란 그런 것이다.


작품을 고른 다음에는 공간에 맞춰 세부 주제별로 작은 소모임을 만들어본다.


어딜 가나 리더십이 있고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녀석이 있다. 그래서 중심이 되는 몇 점의 주요 소장품과 함께 주제별로 잘 어울리는 소장품들을 골라서 팀을 만든다. 그리고 주제에 맞게 도입부부터 작품 배치를 구상하기 시작한다.


소장품 전시를 너무 자주 해서 지겹다면, 나는 이번에는 게임 시나리오가 아닌 막장 드라마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다. 


늘 똑같은 사랑에, 고부갈등과 결혼 이야기면서 막장 드라마가 재미있는 이유는 알면서도 속아주는 반전 요소나 다소 무모한 설정들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출생의 비밀’로 가기로 결심하고 알고 보니 아주 대단한 가치가 있다거나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유명 작가의 작품인 소장품을 고르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에 작품에 숨겨진 비밀을 조금씩 찾아가는 쪽으로 전시 구성을 짜기 시작한다.


이따금씩 ‘김치로 뺨 때리기’에 버금가는 무모한 작품을 포함해서 재미를 시도할 때도 있다. 이럴 때는 전시 제목이나 홍보물 내용도 다소 자극적이다. 관람객들은 다 알면서도 속아주는 것이지만, 전시를 기획하는 나는 신나서 ‘이러면 엄청 놀라겠지?’하고 들떠 있다.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남애리, 《소소하게, 큐레이터》, 문학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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