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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라이터 Mar 30. 2021

어쩌다 강연기획자, 그리고 강연 통해 만난 귀인

김서령 작가님을 추억하며

지인들, 예전 직장 동료들, 심지어 같이 사는 남편까지 갸우뚱 거리며 묻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야?”라고요. 

“... (잠깐의 침묵, 머뭇거림 그리고) 이것 저것하고 있어”라고 답합니다.

 늘 나 스스로를 규정짓기가 애매했는데 최근에 출몰한 N잡러라는 단어가 반가웠습니다. 내가 바로 N잡러더군요.



 10여년 세월 동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입니다.

 -인터뷰라이터 / 영상제작 / SNS콘텐츠마케터

 -정부지원사업 진행 / 강연 살롱 기획 · 운영 / 강의 / 교육프로그램 기획 

 -쉐어하우스 운영 / 파티룸 운영 대행

 

나는 한 가지를 집요하게 파기 보다는 호기심 생기는 여러 분야 기웃기웃하며 시도해 보는 걸 좋아합니다. ‘깊게 보다는 넓게’가 내 성향에 맞더군요. 루틴한 일 반복적으로 하는 건 체질적으로 잘 맞지 않고요.


 회사를 그만두니까 일요일 밤마다 찾아왔던 ‘내일 회사 가기 싫다’병이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훗훗~ 월~금까지 24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믿어지지 않았고 얼마동안은 ‘이상’하기 까지 했어요. 

 넘쳐나는 시간을 일단 배움으로 채웠죠. 회사 다니면서 나 스스로가 고갈되다 못해 바닥이 쩍쩍 갈라지고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에 뭐든 새로운 걸 흡수하고 싶었습니다.


 문화마케터, 자기주도학습, 부동산 강의, 사회적기업가, 창업 강의... 내 촉을 탁~ 건드려 호기심이 동하면 장르 불문하고 닥치는 대로 수강했습니다. 강의의 바다를 헤엄치다 보니 ‘문화기획’분야에 가장 마음이 가더군요. 결국에는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임까지 만들게 되었습니다. 


 ‘아예 관심 분야 강의를 기획해 보면 어떨까?’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사 다닐 적 지역사회 공헌을 해야 한다며 회사 대표에게 제안서 써서 승낙 받아 ‘그 시절 공부의 신’으로 유명했던 고승덕 변호사를 섭외해 청소년 대상 초청 강연을 열어본 경험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그 당시, 나 혼자서 필 받아서 참 재미있게 프로젝트를 진행했거든요.


 ‘까짓, 해 보자’ 마음먹고 달려들었습니다. 강연하기 좋은 무료 공간 물색했고 강사비는 정부지원사업 공모해 충당했습니다. 하려고 마음먹고 여기 저기 문을 두드리니까 신기하게도 길이 보이더군요. 

 예전부터 만나보고 싶어 내 마음속에 리스트업 해둔 분들을 강사로 모셨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전처럼 이름 대면 아는 회사 소속도, 그렇다고 공공기관도 아닌 일개 개인이 강의를 부탁해도 들어줄까? 강사비가 많은 것도 아닌데...’ 내심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여기 저기 연락처 수소문해서 진심 꾹꾹 눌러 담은 강의 요청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신기하게도 거의 대부분의 분들이 강의를 수락해 주셨어요. ‘아, 지레 겁먹을 필요 없구나!’ 자발적 맞닥뜨림 덕분에 한 뼘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 여행가, 문화기획자, 1인기업가 등 자기만의 색깔로 업력을 만들어 가고 있는 개성 있는 주인공들을 초대해 지금까지 150여 차례 강연을 진행해 왔어요. 10~20명 내외 살롱형 강의 콘셉트로 서로 궁금한 걸 자유롭게 물어볼 수 있도록 구성했어요. 강연을 매개로 한 밀도 있는 만남으로 참여한 분들의 만족도가 높았어요. 기획하고 준비하는 나 역시 울림을 느끼고 배움을 얻었지요.


 특히 김서령 작가님과의 만남이 기억에 남습니다. 사실 나는 김 작가님의 오랜 팬이었습니다. <김서령의 이야기가 있는 집>을 읽으며 가슴 깊숙이 훅 치고 들어오는 문장, 은유적인 표현, 인간에 대한 따스함이 묻어나는 글이 참 좋아서 밑줄 쳐가며 읽고 따라 써보았지요. 


 팬심 담아 글쓰기 살롱 모임에 작가님을 초대했는데 기꺼이 응해주셨어요. 섭외가 성사되었을 때 기획자로서의 희열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살롱 강연 당일, 나는 작가님 바로 옆자리에 앉아 한마디 한마디를 곱씹으며 들었고 세밀하게 관찰했습니다. 어디를 가든 작가와 늘 동행하는 듯 보이는 작은 노트에는 글자가 빡빡하게 적혀있었고 참가자들이 던지는 질문들을 늫치지 않고 기록한 후 하나하나 짚어가며 빠짐없이 답하더군요.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철두철미한 글쟁이 성격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글쓰기에 도움 되는 책이라며 가방에서 꺼낸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는 읽고 또 읽은 듯 겉표지가 닳아있었고 페이지 군데군데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습니다. ‘저렇게 수련하니까 남다른 글이 나오는 거구나’란 생각이 들더군요.


 좋은 글, 만족할 만한 글 쓰기에 목말랐던 내게 김서령 작가님과의 만남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시간이었습니다. 수십년 글쟁이 인생 선배가 주옥같은 액기스를 선문답처럼 툭툭 던져주었거든요. 가끔씩 그 시간을 추억하며 혼자서 흐뭇해했어요. 


 그리고 5년 후  페이스북 페친의 글을 보다가 김서령 작가님이 암과 싸우다 세상을 떠났다는 걸 뒤늦게 발견했지요. 처음에는 가슴이 철렁했고 조금 지나니까 먹먹해지더군요. 혼자서 조용히 작가님을 애도했습니다. 

 김서령 작가님의 유고집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를 읽다보니 ‘삶은 반복되면서 동시에 전진하는 나선형 회로일지도 모른다’는 문장이 유독 가슴에 박히더군요.  


 그간 진행한 강연 기획을 통해서 다채로운 ‘인생 선생님들’을 밀도 있게 만났습니다. 이 가운데서도 故 김서령 작가님은 두고두고 기억하고 마음 속에 담아두고 싶은 나의 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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