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청년 May 05. 2024

인간이 생존위기에 몰리면

좌파의 길, 식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 - 낸시 프레이저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내재된 구조적 문제 때문에 스스로 무너질 것이라 봤다.

하지만 오히려 공산주의가 무너졌고 자본주의는 아직까지 건재하다.

왜 그럴까? 자본주의는 스스로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고 있는 걸까?


이 책에서 작가는 자본주의 구조적 문제점들을

요목조목 지적하며,

자본주의로 인해 착취와 수탈을 당하는 세력들,

반자본주의 연대를 통한 사회주의 재발명을 주장하는 것 같다.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목적이 인간 삶의 증진에 있지 않고,

추진력이자 목적 그 자체인 ‘자본축적'이라는 속성 때문이라고 하는 것 같다.


두 번째는 생산된 사회적 부나 잉여를

인간을 위해 쓰려하지 않고

오직 자본축적을 위한 메커니즘인

시장의 힘에 맡겨버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자본의 창조주인 인간이 자본의 노예가 됐다는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는 구조적으로 착취와 수탈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상품생산에 있어 사회적 재생산이 필수적인데도

비임금노동 형태를 취하고

여성과 결합시켜 젠더화 시켰다.

즉 여성의 노동력을 착취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회적 재생산이란?

“인간 존재와 사회적 유대를 생산하고 지탱하는

상호작용, 필수재공급, 돌봄 제공의 형태들을 뜻한다.”


수탈은 타인의 자산을 폭력적으로

징발이나 징용하는 것으로,

강제노동, 토지, 광물, 에너지를

기업활동에 몰아줌으로써

기업의 생산비를 낮추고 이윤을 늘려준다고 한다.


자본주의는 이런 착취와 수탈을 통해

이윤을 늘려야 하기 때문에

자꾸 남성과 여성을,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를

백인과 흑인을, 인간과 자연을 갈라 치기 해서

반페미니즘, 제국주의, 인종주의, 반환경주의적 성격을 띠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를 고착화시키기 위해서 쓰는 비법이

분할 + 의존 + 책임회피를 통해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분할, 분리 전략은

정치와 경제의 분리를 통해

자본의 세계화를 이루고,

강한 정부를 이용해 이 구조를 확정 및 확장시켰다고 말한다.


1970년대부터 부각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는

자본을 국가를 넘어 세계로 향하게 했다고 말한다.


“고전적 자유주의가 국가 개입의

전면적 철폐를 주장하는데 비해

신자유주의는 강한 정부를 배후로

시장경쟁의 질서를 권력적으로 확정하는 방법을 취한다.”


자본주의는 고전적 자본주의에서

마르크스로 인한 공산주의 혁명을 통해,

복지를 추가한 수정자본주의로,

그리고 자본의 세계화를 통한

신자유주의로 변화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하지만 자본주의 구조적 문제점들은

기후위기와 분리 전략에 따라

생태주의로, 페미니즘으로,

반제국주의, 반인종주의 형태로

분리되어 표출되어 왔다고 말한다.


그래서 작가는 이런 반자본주의 세력들의 연대를 통한 사회주의 재발명으로

자본주의를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주의란?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와 그것의 민주적 통제로 특징되는 경제와 사회체계의 집합”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재발명이란 무엇일까?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이 책엔 없다.

이 점이 아쉽다.


어쨌든 사회주의가 정말 자본주의의 대안일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저자가 진단한 대부분의 자본주의 문제점들은 이미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지적한 것들이다.

자본주의는 스스로 변화하면서 지금까지 왔다.


작가는 자본 스스로 자본축적을 위해

인간과 자연을 희생시키며 노예화시킨 것처럼

의인화해서 말하지만 자본 스스로

그런 의도를 가질 순 없다.

자본주의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욕심이 자본주의에 투영된 거 아닐까?


정말 생산수단을 사회적 소유화 시키면 자본주의 문제가 해결될까?

공산주의는 생산수단을 국가가 소유해서 실패하지 않았나?


사적소유가 중요한

지금의 자본주의 제도 아래에서는

부의 사회적 재분배가

원천적으로 안 된다는 것일까?


하지만 지금의 기후위기를 보면

자본주의를 고쳐서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온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낙관주의자들은 과학기술이

자본주의를 구할 것이라 믿겠지만

돈이 안 되는 과학기술은 연구조차 힘든 게 현실이다.


결국 자본주의는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인간이 생존 위기에 몰리면 자본주의를 버릴까?

생태 사회주의는 과연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물음표만 잔뜩 생겼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자꾸 갈라치기 하는 것에 반대하고

함께 사는 세상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데카르트는 틀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