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폴랑 Jan 23. 2022

프루스트의 기념 수건

투박하면서도 상냥한 물건들

몇 달 전, 아이깨끗해를 저렴하게 파는 쇼핑몰을 발견해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아이깨끗해 집에 많아? 필요하면 내가 몇 개 주문해줄까?" 엄마의 대답은 심플했다. "아이깨끗해 돈 주고 사본 적 없는데."


나 같은 자취생이 아닌 가정 주부들은 사지 않아도 집에 당연하게 놓여 있는 물건들이 있다. 사은품으로 받는 아이깨끗해라든가, 곽티슈, 주방세제 같은 것도 그렇고 요즘엔 비말 마스크나 손소독제도 어디서 많이들 얻어오는 것 같다. 사지 않지만 집에 있는 물건 중 끝판왕은 수건이라고 생각한다. 민무늬처럼 보이는 형형색색의 수건들도 자세히 보면 워터마크처럼 글자와 날짜가 박혀있다.


처음에 자취를 할 때부터 지금까지 나도 수건을 사본 적은 없다. 소소한 이벤트에 당첨돼서 펭수 수건을 받은 적은 있는데 새 거라서 안 쓰고 있다가 케이스 채로 당근에 팔아버렸다. 본가에서 가져온 수건들이라서 나는 잘 모르는 행사들이 수건에 흔적처럼 남아있다. 평소 같으면 뭐가 적혀있든 신경도 쓰지 않지만, 오늘 마른빨래를 개면서 몇 년 전 특정 날짜와 함께 엄마의 동창회를 기념하는 수건이 눈에 띄었다. 그 날짜가 문득 선명하게 생각이 났다.




나는 타향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특목고를 다니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나에겐 내 고등학교가 타향이지만, 우연히도 그곳은 엄마의 고향이기도 했다. 마침 그날 엄마의 동창회도 내가 졸업한 학교 근처에서 열렸다. 졸업 후 할 일 없이 본가에서 머물고 있던 나는, 기분전환도 할 겸이라는 핑계로 부모님과 함께 나섰다. 엄마의 동창회에 따라간 것은 아니고, 나와 아빠는 졸업한 학교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영화를 봤다.


졸업 후 6~7년 정도가 지난 뒤 마주한 학교 근처 풍경은 그리 낯설지 않았다. 새로 생긴 가게들이 있었지만 몇 년 전과 다름없는 장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에서도 고등학생 때는 그렇게 비싸다며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 한 식당에 가게 되었다. 성인이 되어 찾은 그 낡은 이탈리안 식당은 겁낼 만큼 비싸지도 않았고, 오히려 투박스러운 분위기였다. 그래서 과거의 내가 조금은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고, 귀엽게 생각되기도 했다.


사실 그동안 아빠와는 둘만 시간을 보낼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식당에 앉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권위적인 타입은 아니지만 보수적인 아빠를 알기에, 고민 상담도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고.


그런데 내 생각과는 정반대였다. 내가 힘들어하는 걸 알기에, 아빠는 내 이야기보다는 당신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안정적인 직업과 평범한 가정, 큰 감정 기복이 없는 성격 등... 사실 내가 보는 아빠와 가족 바깥에서 보는 아빠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아빠 역시 젊은 시기, 나와 비슷한 때에 많은 고민을 하고 살았다고 했다. 처음에는 사관학교를 가려고 했다가 떨어지고(솔직히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재수 삼수를 하여 교대에 진학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방황을 했다는 이야기 등... 늘 평탄하게만 보였던 아빠의 인생도 젊은 시절엔 나만큼이나 들쭉날쭉했더라.


그러면서, 꼭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다. 몇 년이 걸리더라도 괜찮으니까. 그게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면서. 몇 년 해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집 근처에 학원이라도 하나 차려주겠다며. 내 취업 실패를 온전히 책임져줄 만큼 집이 여유롭지 않고, 나 역시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상상해본 적도 없는 일이라 현실감은 없었지만 하고 싶은 걸 끝까지 도전해보라는 격려가 울컥하게 했다. 툭 건드리면 곧 눈물이 나왔던 그 시기에는 미래가 보이지도 기대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왠지 그날 이후로는 다시금 열심히 살아봐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우울함이 깊어질수록 그 상처도 오래 남는다. 가벼운 생채기는 금방 사라져도, 큰 상처는 흉터로 오래 남는 것처럼 말이다. 반대로 큰 위로 역시 오래 남는다. 그 해, 엄마의 동창회가 열린 가을은 나에게 죽을 만큼 힘든 시기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살면서 가장 큰 위로를 받은 때이기도 하다. '그런 시기가 있어 지금의 내가 있다.' 따위의 나이브한 감상은 떠올리고 싶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내 가장 어두운 그림자를 기억하는 것만큼, 커다란 밝은 빛도 기억한다는 것.


그날의 기념 수건은 너무 많이 빨아서 빳빳해지고 낡아 은퇴 직전이지만, 그날 아빠의 격려는 내 기억 속에 언제나 생생한 현역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