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인간들이 무언가를 처음으로 시작할 때 그렇듯, 나 역시 브런치의 세계로 발을 들이면서 꽤 단단한 결의를 갖고 있었다. 평생의 숙제인 ‘좋은 글’에 대한 압박은 잠시 미뤄두더라도, 꾸준히 써 보자는 마음이었다. 나름대로는 연예부 기자를 하면서 썼던 글, 벌써 12번째를 맞는 도쿄 여행기의 절반, 그밖의 짤막한 단상들을 올렸지만 올해 들어서는 단 한 편도 적지 못했다. 핑계지만 지난 6개월은 글 다운 글을 쓸 수 없을만큼 내몰렸었다.
그렇게 무기력한 글쟁이로 지내던 지난달 초, 유난스레 브런치 알림이 울렸다. 특정 글의 조회수가 미친듯이 올랐다. 숱한 여성들에게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폭로된 배우 조재현에 대한 의례적 칭찬글이었다.
단 며칠 동안 조회수는 50만에 가깝도록 올랐다. 비난의 댓글도 적지 않았다. 개중에는 해당 글이 작성된 날짜를 언급하며 내 편을 들어주는 네티즌도 있었다.
블로그 플랫폼에서까지 이런 일을 겪으리라고는 솔직히 상상하지 못했지만, 내 글과 내 글 너머의 자신까지 공격당하는 것이 전연 낯선 경험은 아니다. 회사와 사이 좋은 배우나 작품을 억지로 띄우는 기사를 쓰는 것이 현 연예부 기자의 업무 중 팔할을 차지하는 것이 현실이다. 만일 기사 속 배우나 작품이 대중적으로 질타를 받고 있더라도, 글은 대개 호의적으로 나간다. 그런 기사가 포털 메인에 배치될 경우 이번 ‘조재현 사건’과 비슷한 일이 발생한다.
특별한 요구가 없더라도, 뻔한 칭찬조로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 의외로 이 세계는 날카로운 펜보다 무딘 펜을 선호한다. 다만 작성된 지 1년이 넘은, 보도자료 급의 무난한 글을 일주일이 넘도록 메인에 배치한 브런치의 의도가 아직도 30% 정도는 이해가 가지 않을 뿐이다.
여하튼 고백하자면 나는 조재현의 팬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봤던 해피투게더는 지금도 인생 드라마로 꼽을 정도지만 성 스캔들에 휩싸인 배우가 두 명이나 나왔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는 나의 보는 눈을 책망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사생활이 그다지 투명한 편은 아니라는 풍문들을 여러 군데서 듣기는 했지만 폭로된 것처럼 각종 위력을 사용해 강제로 여성을 제압할 인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조재현 쯤 되는 배우가 ‘솔로몬의 위증’ 처럼 작은 작품에, 조연으로 출연한다는 것에 순수하게 감명을 받았고, 이를 주제로 기사를 작성했다. 그리고 1년 후 그 글은 쓰레기가 됐다.
그 글이 내 인생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삭제할 생각은 없다. 틀린 부분은 단 한 군데도 없다. 하지만 글의 분위기 자체를 성급히 칭찬조로 잡았던 비겁한 관성 탓에 부메랑을 맞은 사례로 남겨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정말 공교롭게도 6개월 가량 전에 작성한 김생민 칭찬글조차도 휴지 쪼가리가 돼 버렸다. 이제는 내가 썼던 글의 주인공 중에 ‘그럴 만한’ 인물을 찾아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충격을 완화해야 할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