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명소 이름을 딴 홍차 이야기 두 번째 - 얌차 소호 블렌드
천편일률적인 브랜드 위주의 쇼핑 거리를 걷다 보면 가끔 피로감이 온다. 런던에서 옥스퍼드 거리를 걸을 때도 그러했다. 『런던을 걷는 게 좋아, 버지니아 울프는 말했다』에서 옥스퍼드 거리를 묘사한 문장을 보면 웅성거리고 시끄러운 곳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018년에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행히 옥스퍼드 거리에서 조금만 골목으로 들어가면 소호 거리가 나온다. 소호 거리에도 웬만한 브랜드들이 입점하기는 했지만, 소규모의 맛집과 카페들이 많아 더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런던 차문화를 현대식으로 이끌어가는 얌차(Yumchaa)의 매장도 소호에 있다. 소호에 왔으니 기념이 될 만한 이름의 차를 골라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선택한 소호 블렌드(Soho Blend)였다.
소호 블렌드는 단정하면서도 약간 히피스러운 첫인상을 주어 약간 다가가기 힘들었다. 오렌지향이 달콤했지만 톡 쏘는 향신료 향도 곁들여졌다.(실제로 이 차에는 오렌지 껍질과 정향이 들어있다.) 추운 날 어울리는 향이어서 그런지 올해 같은 폭염을 겪은 여름에는 절대 마시고 싶지 않았다.
드디어 9월이 되어 날이 선선해졌다. 무엇보다 이 글을 쓰려면 차를 마셔야 하니 조심스럽게 마른 잎을 찬찬히 보고, 다시 향기를 맡은 후 우려 본다. 파란색 수레국화 꽃잎과 큼직한 오렌지 껍질이 차의 비주얼을 담당한다. 마른 잎보다는 한결 가볍고 경쾌한 오렌지와 정향이 코끝을 간질인다.
하지만 5월 런던의 소호 거리는 이런 이미지가 아니었다. 홈페이지에서 '아늑한 소호의 한 카페를 형상화하기 위해 몸을 따뜻하게 하는 블렌딩을 사용했다'는 설명을 읽고 그제야 생각해본다. 소호의 카페가 아늑하다고 하지만 영국 시골 같은 아늑함과는 분명 다르다. 잠깐 쉬어간다 하더라도 마냥 늘어질 수는 없는 곳이 카페니까 말이다. 그래서 적당히 가볍게 향의 수위를 조절했을지 모른다.
여행자의 눈으로는 그 도시의 딱 한 순간밖에 알 수 없다. 소호에서는 거리를 걷기만 했지 어느 카페에 들어가 쉬지 않았다. 그러나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일상 속 어쩌다 작은 변화까지도 그 도시와 공유한다. 그런 사람들이 만든 차를 마시고 이름의 유래를 궁금해하면서, 내가 직접 본 도시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본다.
소호 거리 이름의 원조는 런던이지만, 뉴욕과 홍콩에도 소호 거리가 있다. 각 나라의 소호 거리를 모티브로 한 차를 구해서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뉴욕은 하니 앤 손스(Harney and Sons)의 소호 블렌드를 구하면 되는데 홍콩은 어느 차여야 할까?
◎ 티 레시피
- 끓는 물, 6g, 600ml, 3분
- 2분 30초로도 우려 봤는데 향신료 향이 약하게 난다.
- 크리스마스 티로 마셔도 될 듯하다.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티는 향신료를 많이 넣어 스파이시한 향과 맛이 특징이다. 루피시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처럼 크리스마스 티에 견과류 향을 주로 내기도 한다. 이 차는 향신료와 견과류가 적당히 조화를 이루어서 산뜻하게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에 괜찮아 보인다. 쓰다 보니 독일의 크리스마스 케이크인 슈톨렌이 무척 당긴다!
- 가격 및 블렌딩 정보는 https://www.yumchaa.com/product/soho-spice 에서도 참고 가능하다. 우리나라 물은 런던의 물보다 차가 더 잘 우러난다.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방법대로 하면 차가 너무 진해질 수 있다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