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성급 호텔 부럽지 않았던 후쿠오카 에어비앤비 후기
지금까지 묵었던 에어비앤비 숙소 중에
최고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는 곳
때는 바야흐로, 작년 10월 경. 우리 장여사님의 환갑을 맞이 하야 "첫 해외 가족여행"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길고도 긴 가족회의 끝에 목적지는 '후쿠오카'로 낙찰.
반 강제적으로 가이드 역할이 주어진 막내딸은 왕복 티켓을 13만 원에 득템 한 기쁨도 잠시, 숙소 예약 사이트에 접속 한 순간 "이 날짜의 숙소가 99%가 예약 완료되었습니다"는 문구를 보고 동공 지진을 일으키고야 말았다.
여기서 깨알 TIP!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이때 숙소 예약이 가득 찼던 이유가 우리 가족이 여행했던 기간이 빅뱅이 후쿠오카에서 콘서트 기간과 겹쳤다는 사실. 빅뱅 콘서트 기간에는 숙소를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니, 후쿠오카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빅뱅 콘서트 일정을 체크하시길! (아.. 탑이 군대 갔으니 당분간은 괜찮으려나...?!)
현실을 부인하며 새로고침을 수차례 클릭하였지만 여전히 70만 원을 훌쩍 넘는 호텔 2개만 리스트에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 달라질 건 없었다. 가족여행인지라 주로 자유여행에서 이용하던 에어비앤비는 최대한 피하려고 했으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에어비앤비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여기에도 마땅한 숙소가 없으면 비행기표라도 바꿀 심산으로
숙소 리스트가 100개라면 꼭 100개까지 다 확인해야 하는 이상한 성격 탓에, 해당 날짜의 숙소를 일일이 확인하던 찰나 "아, 이 곳을 가라고 신께서 후쿠오카의 모든 호텔들을 다 완판 시킨 것은 아닐까."라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숙소가 눈에 들어왔다.
아기자기한 일본식 정원에, 목조 느낌의 일본 전통식 주택. 정원에 관심 많은 엄마, 아빠가 좋아할 모습이 눈 앞에 선했다. 하루 숙박 요금은 4명 기준 30만 원 정도로 (인원을 1명으로 설정할 경우 5만 원 정도) 예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고려해볼 만했다.
다만 예약하기 전에 딱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위치였다. 사실 숙소 잡으면서 위치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인데, 짧은 일정에 가족이 함께하는 여행인지라 되도록이면 하카타역이 있는 시내 중심부를 생각하고 있던 터라 시내에서 다소 먼 위치가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이미 꽂힌 마음, 다른 숙소가 눈에 보이겠는가. 한번 이 일본 느낌이 퐁퐁 묻어나는 집을 본 뒤로 다른 숙소는 눈에 차지도 않아 결국 예약 버튼을 눌렀다.
일본 여행은 처음인지라 찾아갈 때 조금 헤매었으나 사람들의 도움을 구해 잘 찾아갈 수 있었다. 하카타역에서 JR을 타고 20분 정도 가서 '고가' 역에 하차하니 호스트인 오사베이씨가 기다리고 계셨다.
다시 차를 타고 10여분 정도를 달리니 숙소가 보인다. 정원을 지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실내의 아기자기한 장식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우리 가족이 배정받은 2층은 사진과 같이 방이 두 개가 붙어있는 구조였다. 사진에는 담지 못하였지만 공간은 사진의 2배 정도 더 컸다. 네 식구가 쓰기에 충분한 크기. 화장실은 1층에 다 같이 쓰는 것이 전부였으나 다행히 2층에 간단히 씻을 수 있는 세면대가 있어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단점을 찾으라면 우리 가족은 11월 경에 후쿠오카를 여행했었는데 워낙 온돌난방에 익숙해진 한국인인지라 잘 때 방이 약간 쌀쌀하게 느껴졌다는 점? 그래도 방 안의 히터와 추가로 준 모포가 있어서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숙소는 해가 뜬 아침에서야 진가를 드러냈다. 식사하라고 부르는 오사베이 씨의 말에 1층으로 내려오니 햇빛이 드리우는 거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으로 하나하나 담지 못했지만 주인의 세심함이 느껴지는 아기자기한 장식들에 우리 네 가족은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호스트는 방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라며 우리 가족에게 유카타를 건넨다. 어느 료칸 부럽지 않은 서비스였다.
방 구경을 마치고 자리에 앉자 호스트가 아침을 내온다.
에어비앤비 리뷰를 보면 이 숙소의 아침을 '일본에서 가장 맛있었던 식사'라고 극찬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본인의 경우 한 끼의 식사라 정확한 판단은 어려웠지만, 어느 정도 리뷰를 단 사람들의 심정을 알 것만 같았다. 엄마, 아빠도 맛있게 드셨고, 무엇보다 음식이 짜지 않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 숙소에 묵으면 숙박비에 아침이 포함되어있는데 돈을 추가로 내면 저녁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집 탐방에 나선다.
아침을 먹었던 다다미 방에서 바깥문을 여니 이렇게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아침 햇살을 만끽하며 이 자리에 앉아있자, 할아버지(호스트인 오사베이씨의 아버지로, 그는 사람들에게 '할아버지'로 통한다. 할아버지라 칭하지만 20대 못지않게 멋지진 아저씨!)가 커피를 내온다.
인심 좋은 할아버지는 커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또다시 아이스크림을 주며 마음을 건네 온다. 이 집에 오면 사육당하고 온 다더니...! 머무는 동안 할아버지는 마주칠 때마다 활짝 웃으면서 어설픈 한국어로 "과자?" "맥주?" "아이스크림"? "커피?" 등 계속해서 물어보며 챙겨주고 싶어 하셨다.
마치 오랜만에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간 손녀딸이 된 것만 같은. 그런 행복한 기분.
집주인의 섬세한 손길이 집 안부터 정원 곳곳에서 느껴졌다. 엄마, 아빠는 일본식 정원에 무척이나 관심을 가지셨는데, 아빠는 여기서 영감을 잔뜩 받아와서는 우리 집 정원의 나무들을 저렇게 짧게 가지치기를 해 놓으셨다. ㅎㅎ
배도 부르고 날씨도 좋고 해서 가족들과 함께 동네를 거닐어 본다.
산책하기 딱 좋은 한적한 시골 마을의 분위기.
동네 탐방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할아버지는 오늘 스케줄을 묻더니 오후에 유후인으로 떠나기 전까지 집 주변에 있는 신사를 구경시켜 주겠다고 하신다. 더불어 주변의 점심 먹기에 좋은 맛집 리스트를 읊어주시며 손수 예약까지 착착착 -
집 근처에 온천도 있다고 하는데, 온천을 갈 정도의 시간이 되지는 않으므로 패쓰.
할아버지의 차를 타고 근처의 신사로 향한다. 차가 없는 숙박객들을 위해 그냥 근처 관광지까지만 차로 데려다 주나 싶었는데 같이 내려서는 신사의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니며 설명해주신다. 근 한두 시간 정도를. 우리 가족끼리 갔었다면 대충 훑고만 나왔을 텐데, 설명을 들으니 사물 하나하나에 의미가 더해진다.
관광지 설명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함께.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아프리카에서 사업을 했었던 이야기(그래서 영어를 잘하시나 보다), 취미로 에어비앤비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 한국에 가면 꼭 김치를 사 온다는 그런 사소한 이야기들. 그는 중간중간 우리 가족의 사진을 남기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이메일로 보내주시는 센스까지.
물론 영어가 통하지 않아도 전혀 문제 될 것은 없다. 만국 공통의 언어 바디랭귀지도 있으니!
엄마가 잠시 기념품 가게에 들리자 그는 통역도 자처한다. 부탁한 것도 아니고, 사실 여자 쇼핑을 따라다니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에도 손 걷어붙이고 나서는 모습에 다시 한번 속으로 감탄했다. 이런 일도 사람을 보통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일 텐데, 마치 10년 된 친구가 놀러 온 것처럼 이렇게 따뜻하게 대해주다니.
신사 구경을 마치자 예약해주신 식당에 또 데려다주신단다. 여기저기 우리 가족 때문에 너무 고생하시는 것만 같아서 밥 한 끼 대접하려고 하는데, 한사코 거부하신다. 자기는 어제도, 엊그제도 먹었다며. 자기는 바깥에서 다른 일을 보며 기다리겠다고 한다. 한참을 실랑이하다 결국 우리 가족을 들여보내고는 식사가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역까지 바래다주신다.
아, 가이드도 이보다 더 친절한 가이드가 있을까
역시 믿고 가는 현지인 추천 식당.
비록 내 노력이 씁쓸해지는 순간이었지만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열심히 알아본 블로그 후기가 가득했던 맛집들 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식당을 들어서니 관광객은 보이지 않고 온통 현지인들 뿐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앉아 눈 앞에서 바로 만들어주는 싱싱한 초밥을 먹는 기분이란.
사실 호스트가 우리 가족에게 베푼 친절이 의무는 아니기에, 모든 손님들이 호스트의 성의를 동일하게 경험할 수 있을지 장담은 못하겠다. 그렇기에 사람마다 이 숙소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제 각각일지도. 그러나 리뷰에 한결같이 칭찬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들의 친절함을 경험한 것 같다. 일본식 전통 가옥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특별하지만, 이 집의 사람들로 인하여 더 특별한 여행이 되는 곳.
아마 누군가가 에어비앤비에서 이 숙소를 발견하고는 위치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면
'충분히 불편함을 감수하고 갈 만한 가치 있는 곳'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후쿠오카를 여행하기 위해 이 숙소를 가는 것이 아니라,
이 숙소를 여행하기 위해 후쿠오카를 방문하고 싶을 정도로.
이번 여행의 가장 큰 행운은 이 숙소를 발견한 것이다. 호텔 예약이 가득 찬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 이렇게 큰 행운을 선물할 줄이야.
또 봐요, 할아버지!
김치 가지고 다시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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