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 20대 총선 사전투표가 시작되던 날 - 점심 쯤.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친구는 어떤 일을 부탁했고 통화 끝머리 쯤 내게 말했다.
"투표해라."
나는 "그리 당연한걸!" 이라며 되받아쳤고 투표를 권한 친구에게 무안을 줬다. 들어보니 투표를 내게 권한 이유가 있었다. 지인에게 자신이 투표를 하러 간다고 말했더니 '뭘 그런걸 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 것!'
그러고 보니 이런 일도 있었구나. 선거 홍보물이 아파트에 도착하던날. 주민들이 각자의 메일함에 꽂혀있던 홍보물 뭉치를 다른 '찌라시'들과 함께 아파트 현관문 한쪽에 버려두었던 장면.
스무번째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서구의 정치학자들은 한국을 불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한다고 한다. 대통령과 행정부의 권한이 너무 강한 탓이다. 국회가 행정부를 견재하는 역할을 했어야 하지만 우리의 정치지형은 국회로 하여금 그 일을 충실히 해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런 상황이 이번 총선을 통해바뀐것이다. 결과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그리 크지 못했다. 투표율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58%. 지난 총선 때 보단 올랐지만 그 증가율은 그리 크지 않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하지 않았다. 투표를 책임이나 의무로 생각하지 않고,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그냥 '그런 것' 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친구의 지인이나, 후보자들에 대해 무관심한 아파트 주민들 같은 사람들이 여전히 열 명 중 넷은 된다는 말이다.
투표라는 행동에 대해 회의를 품는 사회는 그리 건강한 사회는 아니다.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면 사회는 변할리 없기 때문이다.
투표를 왜 해야하느냐고? 누군가 이리 물었을 때 상대를 설득할 만한 논리를 모두가 만들어야한다.
호주, 스위스, 스웨덴의 복지국가들의 투표율은 80% 그 이상을 기록한다고 한다. 소득이 높고 분배가 원활히 이뤄지는 국가들에서 국민들의 정치에대한 관심도도 높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의 투표율이 높지 않은 이유는 복지제도 등의 재분배 제도들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말이기도하다. 이것이 정치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유명한 토크빌의 말 -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치인을 갖는다' - 에 나는 적극 동의한다. 정치를 하는 건 정치인들이지만, 정치인들이 정치를 시작하게끔하는 것은 국민들이다.
이번 총선을 통해 우리 정치지형은 바뀌었지만 어쩐지 오래가지 못할거 같다는 불안도 있다. 그냥 기분탓이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