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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우림 Apr 27. 2016

그 사실이 서글프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는 월요일 오전이면 분리수거 차량이 다녀간다. 일주일에 딱 한 번이다. 일요일 오후 수십 포대씩 쌓여있는 플라스틱, 비닐, 종이, 유리병, 스티로폼을 보면 항상 전에 살던 동네의 골목에서 재활용품을 수거하러 다니시던 어르신들이 생각난다. 지금 사는 이 동네에선 리어카(폐지를 줍기 위해 새벽부터 돌아다니시는 어르신들께는 리어카조차도 호사다!)를 끌며 거리를 배회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분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미관을 생각한다며 아파트 단지에서는 쓰레기 조차 대기업에서 가져가 버리니까 말이다.


 지난 4월 22일에 촬영된 어버이 연합의 기자회견 영상을 봤다. 이 영상에서는 어버이 연합 회원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검게 그을린 피부, 낡은 모자와 점퍼. 분노에 못 이겨 기자들에게 으르렁대는 회원들의 모습을 상상했지만 영상 속 할아버지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가만히 자리에 앉아 기자회견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 다른 영상에서 들었던 ‘어버이 연합은 어르신들이 폐지를 주워 100원, 200원씩 내는 회비로 운영되고 있다’ 던 말이 목에 걸렸다. 이성적, 감정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행동들로 다수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는 ‘극우 보수’ 의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49.6%로 경제협력기구(OECD)에서도 가장 높은 편이다. OECD 평균 노인 빈곤율은 12.6%다.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는 마땅치 않으며 노인연금은 충분하지 못한 탓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들이 손수레를 끌며 거리를 배회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한 달 동안 어느 정도의 소득으로 생활하는지, 그들이 어떤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것들을 찾아보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회원들이 입는 전투복을 보고 그들이 베트남 참전용사이었을 것이다라고 추측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전부다. 그들을 이상한 어르신들이라고 생각하며 무관심으로 대응했다.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과 어버이 연합 간의 관련성을 외국의 극우 보수주의자들의 특징으로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미국 대선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그 극단 성에도 높은 인기를 끌고 있으며, 유럽에서는 난민 문제 때문에 지난 역사가 새겨 놓은 교훈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흐릿해지고 있다. 극우 보수주의는 국가의 존재에 대한 국민들의 의심 때문에 자라났다. 국가가 작동하지 않거나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국민들의 불안이 극우 정치를 활성화시킨다. 국가의 국민에 대한 보호 역할이 희미해질 때 극우주의자들이 그 틈을 파고들었다. 나치가 그랬다. 국민들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되고 칼끝은 사회의 약자 혹은 소수자에게로 향한다. 극우주의자들의 특징이라면 국가는 자신을 보호해주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이가 허상이라는 것을 그들은 인지하지 못한다.


 일당 2만 원이다. 하루 시위대에 섞여 아스팔트 위에서 시간을 보내면 2만 원이다. 최저임금 6030원으로 계산해도 4시간을 채 못 채우고 벌 수 있는 돈이다. 하지만 시위대 속 어르신들이 하루에 2만 원을 벌 수 있는 일이 뭐가 얼마나 있을까. 하루 종일 리어카를 끌고 돌아다녀도 손에 들어오는 건 고작 몇 천 원이라던데.


어버이연합 게이트 이슈는 머지않아 정리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르신들을 이용했던 사람들은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듯 그들을 또 거리에 내팽개쳐버리고 도망칠 것이다. 더불어 이 사회는 노인들을 향한 분노 역시 커지겠지. 그 내용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이성에 공감을 받았든 그렇지 않았든 어버이연합이라는 곳은 이 사회가 무관심하게 바라봤던 이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 준 유일한 공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일당을 명목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면 거리에서 흩어진 목소리가 시위에 참여한 개인들의 정치적 목소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버이연합이라는 단 체가 거리의 어르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하나의 통로였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문제는 이 사건으로 인해 비판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어르신들을 책임지지 않고 이용만 한 채 팽해버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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