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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우림 May 03. 2016

구조조정이라는 말

 수학교사인 어머니는 아이들의 모든 일탈행위의 근원은 그들의 부모라고 말씀하신다. 옆 친구를 때리거나 계속해서 괴롭히는 아이들의 경우, 폭력적인 부모를 뒀을 가능성이 있거나 여러 가지 가정환경으로 인해 부모의 사랑을 아이들이 충분히 받지 못하며 성장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리고 탈선을 일으킨 아이들의 학부모를 학교로 불러 면담을 해보면 부모 쪽에 필연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4년 전. 97년생, 98년 생 친구들이 중학생이던 때, 나의 어머니는 광주의 자동차 공단 주변에 있는 한 중학교로 출퇴근을 하고 계셨다. 당시 어머니는 학교의 학생들이 다른 곳에 비해 유독 드세다는 말을 하셨는데, 들여다보니 IMF 구제금융 당시 공장에서 구조조정을 당해 거리로 내몰린, 공장의 노동자가 아버지인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아버지들이 해고를 당하고 바로 아이들이 태어난 것이다.


 구제금융의 피해는 어떤 한 세대에 국한되지 않고 광범위하다. IMF 전후를 살아낸 모든 이들이 피해자다. 하지만 97년 생, 98년생이라는 정체성은 어쩐지 더 아릿거린다. 현대사에서 상징적인 해는 여럿이다. 4.19의 60년, 독재 유신의 72년, 5.18의 80년, 6월 항쟁의 87년, 성격은 다르지만 올림픽의 88년과 월드컵의 2002년 등. 현대사의 사건들은 과정과 결과가 좋았든 나빴든 그 기쁨과 고통을 전 국민이 모두 함께 나눴다. 그리고 어떤 사건들은 이 사회가 진보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거쳐야만 하는 것들이었다. (물론 여기서 72년은 빠진다.) 민주화 항쟁과 그를 통해 얻어낸 민주주의가 그것이다. 그리고 해당 역사적 사건들이 우리 사회에 가져다준 과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든 개인에게 골고루 돌아갔다.


 하지만 97년, 98년의 IMF는 어떤가. 소설가 박민규가 세월호 침몰을 보고 사고가 아닌 사건이라고 표현했듯 외환위기는 성숙하지 못했던, 그리고 여전히 성장하지 않은 자본의 탐욕이 일으킨 사건이다. 도덕적 문란을 일으킨 자본가들은 유유히 배를 빠져나갔고 그 피해는 노동자들이 고스란히 떠안았다. 그리고 18년 전, 19년 전에 태어난 그 노동자들의 아이들은 온 생애에 걸쳐 IMF를 경험하고 있었다.


 구조조정이라는 말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 20여 년 전의 그것이 국제 금융 기관에 의한 어쩔 수 선택이었다면 이번엔 우리 정부가 직접 기획하고 주도한다. 학자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기자가 그 내용을 정리해 작성한 기사를 보니 예상 실업자 규모가 최소 5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실업자 5만 명’ 그 속에 들어있는 의미를 말해주지 않고 산술적인 숫자로만 그 규모를 이야기하는 학자들이 야속하다는 생각도 든다. IMF 당시 구조조정으로 인해 발생한 실업자의 수는 약 170만 명 이었다. 5만은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숫자다. 그래서 그 피해는 더 실직자 개인만의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쌍용차의 비극처럼 말이다.


 부실기업이 있다면 구조조정을 해서 판 갈이를 하는 것이 맞다. 산업구조조정은 끊임없는 기술 발전과 구조 변화가 동반하는 필연적인 성장통과 같다. 구조조정은 대단히 큰일이지만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지나가야 한다. 예방접종 후 지나가는 미열처럼 말이다. 예방접종을 했음에도 큰 홍역을 치른다는 것은 잘못된 주사를 맞았거나 면역체계가 크게 무너져 내렸다는 뜻일 것이다. 지금 우리가 그렇다. 쭉 그래 왔다. 기업으로부터해고통보를 받은 노동자들은 절망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다. 실업급여, 고용안전망, 노동 재숙련, 재고용 제도 등의 사회안전망은 산업구조조정 과정 중에 일자리를 잃고 좌절하는 노동자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도와주는 필수 장치 들이다. 사회안전망은 국가의 존재 의의이기도 하다. 산업구조조정 논의에 앞서 노동자들이 입을 피해를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실업대책이 필요하다!


 다시 어머니 말로 돌아와서.

“아이들이 엇나가는 게 아이들이 나빠서겠니. 어른들 때문이지. 어른들은 또 무슨 잘못이니. 사회가 이런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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