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자작몽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지명 Apr 16. 2017

노란꽃 이야기

세월호참사 3주기를 추모하며

유난히 깨끗한 밤 하늘이었어.

수 많은 별들이 제각각 반짝이고 있었지.

달빛은 또 얼마나 곱고 밝은지

달빛이 내려앉은 키작은 풀들이 흔들흔들 일렁거리는게 다 보일정도였어.

하늘을 올려다보며 밤에 취해 있던 그 때였어.

바로 그 때, 큰 바람이 솨아-하고 지나갔단다.

주변의 나무와 풀들도 함께 들었어.

그 웅장한 소리에 감탄하며

숲 속의 모든 나무와 꽃들이 부르르 몸을 털어 환호했었지.

그 바람이 지나가고 다시 달빛이 내리는 소리만 고요히 들려왔어.

아마 그 때였나봐.

네가 생겨난 것이.

바람이 지나가면서 내 몸의 무언가가 툭!하고 떨어져나간 것 같았거든.


며칠이나 지났을까?

하루는 햇볕이 내리쬐었고

또 하루는 비가 내렸어.

태양이 떠올랐다 사라지며 흩뿌린 노을을 그 후로 몇 번이나 더 보았지.

그러던 어느날,

옆에 놓인 낙엽 하나가 들썩들썩 꿈틀대더니

갑자기 뒤로 벌러덩 나자빠지는것이 아니겠니.

무슨 일인가 싶어 몸을 숙여 가만히 들여다보았더니만

세상에나! 웬 쬐그만 녀석 하나가 자기 몸집만한 흙알갱이를 머리에 이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 뭐야!

너무나 작고 여려서 부러질 것만 같았어.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끙끙대는 것이 안쓰러워 한참을 마음 졸였단다.

하지만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흙알갱이를 한 개씩 한 개 씩 들어 옆으로 내팽개치더니

드디어 허리를 죽 펴고 일어나 하늘을 향해 머리를 들어올렸어.


그 때의 표정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해.

괴로움으로 찡그리고는 있었지만   

말갛게 상기된 얼굴은 생기로 씰룩거렸고

입가에는 슬며시 미소가 번졌지.

그 순간만큼은 세상 무엇보다도 제일 강인해보였어.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단다.

분명 그 자리에는 흙과 낙엽만 있었을 뿐이었어.

전날까지만해도 그곳엔 네가 없었던걸.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생기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네가 생겨났다니!

그 날의 하늘은 내가 알고 있던 하늘과 달라진 것 같았어.

그 날의 햇살은 완전히 새로운 느낌이었지.

그 날의 바람은 그 어느 때보다도 향긋하고 맛있었단다.

나에게는 그 날이 기적과 같았어.

너를 처음 만난 그 날 말이지.


기억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매일매일 너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단다.

동그랗고 따뜻한 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또 동그랗고 차가운 것은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하늘을 날아오르고 노래를 부르는 아름다운 것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때론 그늘을 만들어주고 때론 낙엽을 떨구는 그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야.

너는 늘 내가 이야기해주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궁금해 했어.

왜 하늘이 밝아졌다가 어둠이 찾아오기를 반복하는 것인지,

바람은 어디에 살고 있는 것인지,

왜 빗방울은 맑고 투명한지에 대해서 물어보았지.

너의 많은 질문 중에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낙엽에 관한 것이었어.

네가 첫 가을을 맞던 그 해,   

뜨거운 여름 내내 너에게 살랑살랑 부채질을 해주던 어린 나뭇잎이 툭 하고 떨어지던 그 날,

네 옆에서 생기를 잃고 바스러져가는 낙엽을 보고 슬픔에 젖어 나에게 물었지.

‘나뭇잎이 왜 떨어진거야?'

‘낙엽은 이제 더 이상 나뭇잎이 아니야?'

또 너는 물었지.

‘낙엽은 이제 어디로 가는거야?'

그때는 그저 '글쎄'라고만 대답했었던 것 같구나.

네가 조금 더 크면 이야기해주어야겠다고만 생각했었어.


너도 알겠지만 우리의 모든 날들이 아름답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단다.

바람이 너무 거센 날이면 몸을 잔뜩 웅크려도 온 몸이 휘청휘청 흔들거렸어.

뿌리채 뽑혀나가지 않으려면 발끝에 있는 힘껏 힘을 주어 버텨야했었지.

어느 날인가는 바람이 어찌나 거세던지   

자갈 하나가 굴러와 나를 짓누른 바람에 내 허리가 그만 휘어지고 말았잖니.

또 햇볕이 너무나 뜨겁던 그 날들은 기억나니?

바싹 타들어가는 하루하루를 견뎌내느라

우리는 축 늘어져서 대화도 하지 못한 채 며칠씩 지내곤 했었지.

곁에 있던 나무가 햇볕을 가려 숨 돌릴 틈을 주고

살랑살랑 부채질로 열기를 식혀주지 않았더라면

너와 나는 무척 힘들었을거야.


그래도 그 날들을 지내며 자라나는 너를 보는 것은 늘 기쁨이었단다.

너의 색깔은 점점 짙어지고

너의 몸통은 날이 갈수록 단단해졌지.

어느날 보니 솜털이 빠지고 제법 까슬까슬해져서는 내 손이 쓸린 적도 있었어.  

아프긴 했지만 한 편으로는 마음이 든든했단다.

춥고 길었던 겨울이 지난 그 해 봄에는   

불룩하게 꽃망울이 올라

네가 한껏 들떠 있었던게 기억이 나는구나.   

쑥스러워 말은 하지 못했지만 나도 너만큼이나 기대에 차 있었단다.

너의 꽃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너의 향기는 얼마나 가슴 설렐까

나보다 더 크고 화려한 꽃이 되기를

나보다 더 짙은 향기를 세상 끝까지 뿜어주기를

앞으로 다가올 하루하루를 마음 속에 그려보았단다.

안개가 자욱하던 그 날 아침까지 말이야.


그 날 아침, 너의 노랫소리가 생생하게 기억나.  

너는 날씨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엇이 그리도 신나고 즐거웠는지

몸을 흔들흔들하며 콧노래를 불렀어.

날씨가 스산하긴 했지만 네가 즐겁다니 나도 괜찮은 것 같았어.

그런데 갑자기

짙은 안개가 밀려내려오더니

너의 노랫소리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어.   

너는 보이지 않았고

너의 소리는 아스라이 들리다가 사라져 버렸지.

너를 찾기 위해 안개를 있는 힘껏 밀어냈지만

안개는 흩어지는 듯하다가 다시 눈앞을 가리기를 반복했어.

심장이 뛰고 눈물이 나는데

멍하니 있을 수가 없었어.

너를 찾아야했으니까

안개가 너무나 빨리, 너무나 짙게 내려와

눈물을 닦을 새가 없었어.

안개 사이로 너의 불룩한 꽃망울이 어렴풋이 보였어.

너의 까슬한 손도 보였지.

하지만 너의 노랫소리는 멈춰있었어.

아침까지만 해도 분명 내 귀에 들렸었는데…

너는 분명 내 옆에서 한들한들 춤을 추고 있었는데…

그 날의 하늘은 내가 알고 있던 하늘과 달라진 것 같았어.

그 날의 어둠은 처음 느껴보는 무서움이었지.

그 날의 바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날카롭고 아팠어.

나에게는 그 날이 지옥과 같았어.

너를 잃던 그 날 말이지.


내 옆에서 생기를 잃고 스러져가는 너를 보고 네가 물었던 질문들이 떠올랐어.

‘나뭇잎이 왜 떨어진거야?'

‘낙엽은 이제 더 이상 나뭇잎이 아니야?'

또 너는 물었었지.

‘낙엽은 이제 어디로 가는거야?'

그때 대답을 해줄걸 그랬어.

네가 궁금해하는 것은 뭐든지 다 말해줄걸 그랬어.

‘낙엽은 이제 나뭇잎은 아니지만 뭐든지 되고 싶은 것이 될 수 있단다.'

‘낙엽은 이제 어디든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도 있단다.'

그리고 그 때 말해줄걸 그랬어.

'우리가 나뭇잎을 기억한다면 그것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우리 곁에 살아있는 것과 같단다. 나뭇잎은 별들이 빛나고 달빛이 내리는 밤 안에 머물다 햇빛과 빗방울을 타고 이곳에 내려오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하늘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지는 그 모든 순간에 그것을 기억하기만하면 돼.'


‘그런데 나뭇잎이 왜 떨어졌는지는, 글쎄…그건 바람이 우리에게 알려주면 좋겠구나.'


큰 바람이 솨아-하고 지나갔다.

내 눈에서 눈물이 툭!하고 떨어져나갔다.



매거진의 이전글 진리(眞理)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