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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Sep 15. 2020

베를린으로

내가 사랑하는 도시


 하이델베르크에서 베를린으로 넘어가던 기차에서의 시간을 잊지 못한다. 낯섦이 두려움 이외에 감정으로 다가왔던 그 시공간, 처음으로 모험 같기도 하고 탐험 같기도 했던 우리의 여행. 옆자리에서 신문을 읽던 할아버지의 체취도, 바스락거리는 그 소리도, 창밖으로 펼쳐지는 너른 들판도, 그 사이사이 네모난 가정집들도, 이 모든 것을 지나 도착하는 도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정작 도착한 베를린은 곧 비가 쏟아질 듯 어둡고 퀴퀴했지만 나는 그 회색의 베를린이 좋았다. 다양한 인종이 비교적 평화롭게 서로 존중하며 살아간다는 그 도시가 너무 밝지만은 않아서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계속 흐리지만 끝끝내 비를 뿌리지 않는 하늘이 어쩐지 고마웠다.

전쟁의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놓고 있는 성벽과 건물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과 베벨 광장의 빈 책장, 몇 해 전에 일어났던 테러 현장에 놓여진 추모 꽃들과 촛불들이 시끄럽지 않게, 자연스럽게, 그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베를린은 몇 년을, 혹은 몇십 년을, 아픔과 슬픔을, 상처와 고통을, 잘못과 악행을 잊으려 하지 않았고 잊으라 하지 않았던 곳이었음을 베를린을 떠나 드레스덴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깨달았다.


@카이저빌헬름 기념교회 앞 광장, 크리스마스마켓 트럭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던 공간
@홀로코스트메모리얼, 어두움과 공포만 가지고 있었을 그들을 기억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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