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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Sep 15. 2020

엄마와 KBL

내가 사랑하는 스포츠


 당신은 하지도 않는 스포츠를 그렇게 보냐며, 운동은 보는 게 아니라 하는 거라며 아빠는 엄마를 놀려댔다. 실제로 엄마의 살은 운동이라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처럼 하얗고 근육도 없이 물렁했으며 엄마가 격한 스포츠를 하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울리지도 않는다. 그런 엄마가 겨울이면 프로농구경기를 빼놓지 않고 봤다. 그것도 여기저기 채널을 돌려가며 이쪽 경기 저쪽 경기 모두 챙겨가며 아주 열심히 봤다.

 치, 나는 만화영화나 오락프로그램 보고 싶은데.
 좀처럼 리모컨을 내어주지 않는 엄마 곁에 앉아서 귤을 까먹으며 농구 경기를 함께 시청했다. 그렇게 투덜거리며 보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손에 땀을 쥐었고 긴장한 탓에 발끝이 오므라들었다. 선수들처럼 마지막 1초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다가 경기가 끝나면 엄마와 나는 서로의 발가락을 보며 와하하 웃었다.

 어느 한 팀 혹은 한 선수를 정해서 마음을 주고 응원하면 더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엄마에겐 최애가 없었다. 누구를 응원하냐고 물어도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고 “그냥~”이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경쟁해서 이겨야만 하는 스포츠의 세계는 평화롭고 모두를 아우르는 엄마의 성정과 전혀 맞지 않았지만 이긴 팀을 좋아하지도 진 팀을 안타까워하지도 않는 모습으로 엄마는 KBL을 사랑했다. 그때의 엄마는 육아와 가사만 남은 무료하고 축소된 삶에 치열함 같은 것이 필요했을까, 이제야 생각한다.

 엄마가 사랑했던 한국프로농구를, 그 계절 꽁꽁 언 발을 녹여주던 TV앞 이불 속 온도를, 엄마 곁에 파고들어 받아먹던 노오란 귤의 맛을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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