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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Sep 15. 2020

좋은 기분과 좋아하는 기분

내가 사랑하는 기분


 인스타그램 피드를 쭈욱 내리다 보면 내가 무엇을 자랑하고 싶은지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주로 자연이거나 책이거나 남편인데 조카가 생긴 이후로는 아기도 추가됐다. 분명 우울하거나 화가 나거나 억울한 날도 있었을 텐데 인스타그램에는 좋은 날과 좋은 날 사이 좋지 않은 날을 굳이 기록하지 않는다. 업로드하면 괜한 걱정과 공허한 위로만 쌓일 것 같은 일들은 남편에게도 공개하지 않는 일기장 앱에 털어놓고 만다.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여러 색깔을 발견할 때, 빛나는 문장에 사로잡혀 헤어나오지 못할 때, 함께 찍은 사진이 생각보다(실물보다) 괜찮을 때 기분이 좋아진다. 100% 실패 없는 기분이다. 내가 내는 괴상한 소리에 조카가 함박웃음을 지어줄 때는 그보다 더 기분이 높아진다. 네가 웃을 수 있다면 내 모든 것을 망가뜨리겠어, 라는 심정으로 목소리뿐 아니라 얼굴도 마구 뒤집어본다. 갖은 노력에도 좀처럼 웃어주지 않으면 매우 초조하고 답답해진다. 너는 나를 천국으로든 지옥으로든 보낼 수 있구나 싶다. 그렇지만 기분이 좋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그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행복으로 꽉 찬 기분이기 때문이다. 나라는 인간은 욕심이 많아서 이미 만족스러우면서도 더 큰 만족을 구하게 되는가 보다.

 하늘도 바람도 꽃과 나무도, 그 어느 문장도 당장의 내 기분을 위로해주지 못할 때, 누군가의 얼굴이 오히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게 만들 것 같을 때는 기도한다.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으면 생각과 감정이 산만하게 흩어질 것 같아서 기록한다. 참을 수 없는 일을, 관계를, 나의 어리석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써 내려간다. 해결되지는 않아도 더 이상 쓸 문장이 없으면 그쯤하고 덮은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가라앉은 기분은 다시 차오르게 마련이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얼마쯤 시간이 흐른 후 무심결에 다시 들추어보면 새로운 기분이 든다. ‘고작 이런 거로 힘들었나’부터 ‘이렇게나 힘들었구나’까지 아무도 알아주지 못했던 마음을 내가 알아준다. 그렇게 한고비 넘긴 것 같은 안도감을, 다행스러운 기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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