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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Sep 18. 2020

우리 사이가 불안하지 않다는 것

내가 사랑하는 친구


 처음 따돌림을 경험했던 때는 내가 5학년이었다. 질풍노도의 시기 초입에 선 소녀들의 마음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어울리던 친구들 중 대장 같던 아이가 주도하여 일명 ‘체인지’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노트 한 권에 돌아가면서 고치고 싶은 자신의 단점들을 적고 서로 도와가며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보자는 취지였다. 친구들을 돌고 돌아 내 앞에 주어진 노트를 펴고 고민했다. 나는 어떤 부분을 좀 고쳐야 할까. 외모, 성적, 성격, 가정환경, 친구 관계, 태도나 취향, 어느 것 하나 특출나지 않았지만 그랬다고 너무 바꾸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냥 너희들과 매일 만나서 이렇게 같이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면 그걸로 될 것 같은데. 매우 만족은 아니지만 이대로의 내 모습과 내 삶에 큰 불만이 없는데.

 나는 장난 반 진심 반으로 ‘없음’이라 적었다. 노트가 다 돌고 나서 평소처럼 수업을 듣고 쉬는 시간이 되었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친구들이 내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뭐 좀 빌려달라는 요청에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내 장난이 그 애들에게는 장난이 아닌 모양이었고 나는 재수 없는 잘난척쟁이가 되어 있었다. 당혹감에 화장실로 달려가 숨죽여 울었다. 그 이후에 어떻게 풀었는지 그 친구들과 다시 친해졌는지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난다. 그 묵직한 충격만 남았다.

 그 이후의 친구 관계는 외면 당하지 않으려는 노력 위에 세워진 듯하다. 친구로 남겨지기 위해 애써야 했던 날들이 있었다. 내 감정보다 친구의 요구가 더 중요했고 내가 다소 불편하더라도 친구가 좋아하면 그만이었던 시절이었다. 오늘 친구인 우리가 내일도 친구일 수 있을지 불안했던 밤이 많았다. 내가 지워진 우리라는 관계에 지쳤을 무렵 어쩌다 갑자기 모여서 ‘야, 너네 그 패밀리’라고 불리게 된 친구들이 있다.

 내 쪽으로 기울어진 희생이 당연하지 않았던, 얼른 내일이 되기를 기다려지게 해주었던, 쭈뼛거리던 내게 먼저 팔짱을 끼어주었던, 소풍 때 누구랑 앉아야 할지 말 못할 고민을 덜어주었던, 늦더라도 혼자 갈 일이 없게 해주었던, 친구란 마땅히 이렇다는 것을 책이 아닌 말이 아닌 몸으로 알게 해주었던 친구들이 있다. 지금도 나는 그 애들에게 배운 방법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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