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마녀의 테마에세이
이제는 그냥 관계, 라는 걸 포기하고 산 지 오래 됐지만
사실 나는. 내 생각은 그렇다.
선 넘지 마라. 거리두기 해라. 예의 지켜라. 안다, 안다고.
하지만 세상은 그런 게 아닌데.
예를 들면 이런 거.
문 잠가 놓은 밀폐된 집에서 당신이 쓰러졌다면,
당신을 구하려면 어쨌든 무단 가택침입을 해서라도 집에 들어가야 되잖아?
그런 경우에는 어쨌든 선을 넘어야 한다.
서로 선을 지키는 건 솔직히 쉽다.
하지만 인간 관계에서“긴밀함”이 사라진다는 건 결국
워험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아서라도 살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사라짐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의 높은 자살률과 고독사의 이면에는
”선 넘지 말라는 경고“로 꽁꽁 무장한 채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하는 자기중심주의적인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닌지.
나 또한 사람들로부터 입에 못 담을 모욕과 폭언으로 상처받아 왔지만
뒤늦게 깨달은 것은,
그 중의 삼 분의 일 정도는 상대의 무지에서 비롯되었고
삼 분의 이 중에서 7,80프로는 의도를 곡해했고
진짜 악의로 무장한 발언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내가 인간적으로 결함이 많다는 걸 아니까 상대의 결함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참 슬픈 게 뭐냐 하면.....
서로 ”긴밀해져야 할 이유가 일도 없는“ 관계들이 많다는 것.
상대가 잘못되어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손 놓고 구경만 해야 하는데
그래선 안 되는 게 아니라 그래도 되는 관계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
나야 편하지 그럼.
아니 내가 발벗고 나서서 누굴 구한다고 그 사람들이 나 어려울 때 날 구하겠어? 그럴 리 없지. 그러니까 그냥 나는 편하지.
하지만 세상만사 편한 것만 찾아서 될 일인가.
어떻게 보면 마음을 안 쓴다는 건 오히려 편하고 쉬운 일이다. 그러나.
선을 넘지 말아 댤라는 말은 결국 내가 힘들 때조차 내 고통을 외면해달라는 뜻과 동의어라는 걸 사람들은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고통스럽다고 아무한테나 매달리고 싶진 않겠지. 최소한 매달리고 싶은 상대를 고르겠지. 호흡곤란이 와서 인공호흡해야 하는데 모르는 사람/싫은 사람이 내 입에 자기 입 갖다댄다 하면 싫어요 하고 그냥 죽겠지.
쓰다 보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살다 보면 더러 고집불통들을 만난다.
그 고집불통들은 안하무인이다. 내 식대로 해 왔으니 앞으로도 내 식대로 하겠다는 식이고 사실 그들에게는 내가 필요없다.
그리고 내게도 그들은 필요없다.
진짜 필요한 건 건강과 돈이지.
그런데 나처럼 건강과 돈이 무엇보다 필요한 사람에게 가지고 싶은 것을 물었더니 ”가족“이란다.
결국 그의 솔직한 속내가, 유연하지 못한 고집쟁이들의 속내일지도 모른다.
선 그어 놓고 불난 집에서 타죽어갈 족속들아.
니 선 내 선 같은 거 따지기 전에 인간을 폭넓게 이해하는 법부터 좀 배울 수는 없는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