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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Frame Jan 10. 2017

베네치아였기 때문이다

#33. 물의 도시, 아쿠아 알타

그렇게 밀라노를 거쳐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이미 해가 지평선으로 넘어간 시각. 그곳에는 넘실거리는 어둠에 조금씩 침식당하는 도시가 있었다. 골목은 좁았고, 어김없이 운하가 있었다. 고요한 수면 위에 비친 풍경이라는 것이 참 기가 막혀서 자주 걸음을 멈췄다. 구글맵에 의지하고도 숙소를 찾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종종 예상치 못한 운하에, 막다른 벽에 가로막히곤 했는데 그런 불편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던 건 오로지 베네치아였기 때문이다.

15.01.15, 베네치아, 리알토다리

오른쪽, 왼쪽을 세알리며 길을 기억하는 것도 참 무의미한 일이다. 빛바랜 페인트에, 창틀에 걸린 빨래에, 베란다의 화분에, 불투명한 옥색의 운하에, 그 위를 미끄러져가는 검은 곤돌라에 시선을 빼았기다보면 어느새 방향감각은 희미해져있다. 이리저리 헤매다가 좁은 하늘에 익숙해질 때쯤이면 아무런 예고 없이 광장이 나타나는데, 이 좁은 골목의 끝에 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크기다. 종을 치는 청동 인형 아래로 모자이크가 가득한 성당을 지나 꽤나 오래되었다는 카페에 자리를 잡는다. 커피 한 잔 다 마시기도 전에 가교가 놓이고 비둘기들은 날아오르고, 아아 그리고 어느새 찰랑거리는 물. 쫓기듯 밀리듯 자릴 옮겨도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던 건 오로지 베네치아였기 때문이다.

15.01.15, 베네치아, 산타마리아 살루테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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