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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Frame Jul 12. 2017

하늘이 온통 연분홍색으로 물드는 것을

#35. 친퀘테레, 마나놀라에서

베네치아에서 피렌체로, 피렌체에서 피사로, 피사에서 라스페치아로, 라스페치아에서 다섯 마을 친퀘테레 중 가장 북쪽의 몬테로소까지 오전 9시에 출발한 여행은 오후 3시가 돼서야 끝이 났다. 또렷하게 그어진 지평선과 하얀 구름, 쏴아 거리는 파도 소리로 긴 여정을 보상받는다. 다섯 마을이 있다며 나긋한 목소리로 속삭여주는 음악을 들으며 해안가를 조금 걷다가 마나놀라로 향했다.

15.01.17, 친퀘테레, 마나놀라

작은 만을 중심으로 경사가 급한 언덕에 알록달록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식사를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녔지만, 문을 연 식당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 몰라 사 둔 초코바를 씹으며 건너편 언덕에 올랐다.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난간 끝에 걸린 이탈리아 국기는 요란하게 펄럭거렸지만, 저기 아득한 지평선은 너무나도 고요했다. 파도가 하얀 거품을 만들고 지우는 것을, 두터운 구름 아래로 빨간 해가 나타나는 것을, 위와 아래의 경계를 태우며 사라지는 것을, 하늘이 온통 연분홍색으로 물드는 것을 바라보았다. 지평선이 깊은 어둠에 잠기고, 난간 끝에서 무엇인가가 펄럭거리는 소리만 남게 돼서야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전망대에서 내려왔다. 마지막 열차를 타고 피렌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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