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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Frame Aug 11. 2017

500년이 넘도록 지친 기색이 없다

#36. 피렌체, 광장으로, 박물관으로

날이 맑고 따뜻했다. 등을 쓰다듬는 온기가 적당하여 여지껏 챙겨 다녔던 방한 도구들과 걱정, 염려 따위를 침대 위에 던져두고 숙소를 나섰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이 마음에 들었다. 조금 더 걸어 나와 강을 오른쪽에 끼고 걸었다. 제멋대로 증축하고 보수하여 명물이 되어버린 다리까지 걸었다. 잠깐 멈추어 서서 조깅을 하는 사람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도 여기 살았더라면. 그래도 조깅은 안 하겠지.

15.01.18, 피렌체, 레푸블리카 광장
15.01.18, 피렌체, Cafe Gilli

우피치 미술관을 둘러보고 눈에 걸리는 트라토리아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1733년에 문을 열었다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1733년에 아메리카노가 있었을까? 카푸치노나 라테를 마실걸. 7,000원짜리 아메리카노가 반짝거리는 은주전자에 담겨 나왔다. 찻잔에 따라서 홀짝거리며 마셨다. 회전목마는 와글거리고 아이들의 웃음은 반짝거렸다. 조각상 앞을 바쁘게, 혹은 더디게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래, 라테를 마실걸. 참 멋대가리 없는 사람이다 나는.

15.01.18, 피렌체, 다비드 상

아카데미아 박물관으로 갔다. 거대한 크기의 다비드상을 올려다봤다. 지난 미켈란젤로 특별전에서 '인증받은 정교한' 모조품을 본 적이 있었다. 진품과 모조품을 구별할 눈은 내게 없다. 단지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오로지 하나의 조각상을 위해 마련된 공간,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조명과 자연광 등이 그 순간을 특별하게 만들 뿐이다. 주변을 빙빙 돌며 살펴보고,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고, 마침내 주저앉아 스케치를 시작했다. 500년을 넘도록 포즈를 잡아 온 모델은 지친 기색이 없다. 분명 움직일 것 같았던 조각상은 스케치가 다 마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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