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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Frame Oct 18. 2017

무엇인가를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다

#38. 로마, 바티칸

유럽 여행의 마지막 거점. 마침내 로마에 도착했다. 앞선 35일간의 여행은 나를 꽤 익숙한 여행자로 만들었다. 낯선 도시에 도착해서 어렵지 않게 숙소를 찾고 거리낌 없이 낯선 천장 아래 짐을 풀었다. 같은 방을 쓰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고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았다. 와이파이를 연결해 바티칸으로 향하는 교통편을 확인하고 숙소를 나섰다. 모든 것은 숨 쉬듯 자연스러웠다.

15.01.21, 바티칸, 라오콘

오디오 가이드를 따라 바티칸 박물관을 관람했다. 저 멀리 이집트에서 온 고대의 유물부터 중세의 테피스트리들을 지나 조각상들이 전시되어있는 공간까지 이르렀다. 첫 도시였던 런던에서 방문했던 대영 박물관이 기억났다. 호사스러운 문화생활이 익숙하지 않아 겉만 빙빙 돌았던 기억이 난다. 어느 것도 느끼지 못하고 결국 쫓기듯 빠져나왔던 기억이 난다. 발길을 멈추는 것도,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도 내게 달렸다는 것을 이젠 안다. 오래된 조각 앞에서 마음껏 시간을 보내며 스케치를 하는 그 모든 과정은 숨 쉬듯 자연스러웠다.

15.01.21, 시스티나, 천지창조
15.01.21, 시스티나, 최후의 심판

익숙했던 흐름이 깨지는 것은 단 한 순간이다. 여행이라는 기회를 통해 나는 닫힌 세계관, 조악했던 인식의 틀, 스스로 정해놓은 한계를 뛰어넘는 무엇인가를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다. 시스티나 소성당의 벽화들이 바로 그 계단이다. 넋을 잃고 본다. 어느새 나를 무디게 만들었던 자신만만함은, 익숙한 여행자라는 오만함은 내 상상을 한참 뛰어넘는 '걸작' 앞에서 무의미해진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감탄하고 만다. 보고 있어도 믿을 수 없는, 그 장관 앞에서 나는 다시 한번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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