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고 느낀 감정을 고스란히 필름에 담았다.
처음 필름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을 때가 언제더라.. 아마 중학교 3학년 때인 것 같다. 항상 아빠, 엄마 옷장에 푹 처박혀있던 까만색 무거운 물체. 생긴 건 반딱반딱 멀쩡했고 항상 옷장의 세 번째 칸 왼쪽, 깊숙한 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항상 그 자리에 있었던 카메라에게 갑자기 관심히 생긴 이유는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친구랑 어렸을 때 찍었던 사진을 찾기 위해 먼지 묻어 있던 앨범을 뒤지다가 아빠가 찍어둔 필름 사진들을 보고 '나도 한 번 찍어볼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아빠한테 달려갔다.
"아빠, 나 이거 쓸래. 어떻게 찍는 거야?"
창고에서 나무를 다듬는 데에 집중하던 아빠는 안 쓴 지 오래돼서 잘 기억이 안 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필름 카메라를 살 때의 이야기를 해준다.
"이게 말이야~ 너 태어나기 전에 너 찍어주려고 산거란 말이야. 그때는 이게 엄~청 비쌌어요. 너 태어났을 당시에 가격이 100만 원이 넘었으니 말 다했지. 요즘엔 사려고 해도 못 사~"
아빠는 추억을 늘어놓았고 나는 카메라를 만지며 딴짓을 했다.
그러다가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인터넷에서 내 카메라 기종의 사용법 책을 그대로 스캔해서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 그렇게 모니터 너머로 사용법을 익혔고, 그때까지만 해도 사진관에서 필름을 팔고 있어서 쉽게 필름 카메라를 작동시킬 수 있었다.
첫 필름을 현상하고 받았을 때가 생생하다. 렌즈에는 곰팡이가 끼어서 한쪽이 흐릿하게 나왔다. 하지만 필름의 그 느낌은 여전히 좋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16살짜리 여자아이는 렌즈에 곰팡이가 낀 줄도 모르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더랬다.
그렇게 몇 주 동안 필름 카메라를 만지다가 금세 귀찮아진 나는, 카메라를 다시 옷장 한 구석에 고이 놓아두었다.
시간이 흘러, 필름 카메라를 제대로 사용한지는 2014년부터.
2013년에 갔던 유럽여행에서 미러리스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이 몇 천장이 되다 보니 잘 들여다보지 않게 되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 필름으로 다시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나는 손에 필름 카메라를 들게 되었다.
지금 내 나이 26살. 나와 함께 먹은 26살 된 필름 카메라는 26년의 세월만큼 손 때가 묻었고, 여전히 고쳐야 할 곳이 많지만, 아직은 그래도 사진 결과도 괜찮고 잘 버텨주고 있다. 이제는 필름 카메라를 많이 쓴 만큼 다른 필름 카메라도 많지만 그중에 가장 정이 가는 건 여전히 26살 된 너라는 걸. 알까?
오래된 시간을 살면서 많은 사람들의 순간과 감정을 담았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그대로 담았다. 필름은 찍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너무나 달라지는 사진이기에.
누군가가 나의 사진과 글을 보고 가끔은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고, 가끔은 감동과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내가 담은 인생과 세상의 감정을 글로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