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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love Sep 30. 2015

#6 끝나지 않는 하루

터키에서 자전거 8시간 타기

터키 여행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뭐야?


하.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바로 자전거 8시간 타기

잊으래야 잊을 수가 없는 기억이다.




어제 아바노스로 가기 전 도형오빠와 나는 자전거 대여점에 들려서 내일 탈 자전거 3대를 예약했다.

두대는 도형오빠랑 내 꺼, 그리고 한대는 석호오빠 꺼 캬캬캬캬 아이고 배야 웃기다.

아무것도 모르는 석호오빠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우리의 8시간 자전거 투어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자전거를 빌려서 나오는데 흙바람이 몰아친다. 좁은 비탈길을 내려와 우리는 흙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서  비틀비틀하다가도 금방 중심을 잡고 아슬아슬한 길들을 헤쳐나갔다.

주인아저씨가 준 특별한 핑크색 자전거. 모두들 사륜바이크를 타고 달릴 때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힘듦과 희열이었다. 이름 모를 꽃 하나를 자전거에 꼽고 달리고 또 달렸다. 모래바람도 맞고 비도 맞고 햇빛도 쬐고 날씨가 오락가락이다.


끝없이 펼쳐진 오르막이 나타났다. 엄청나게 가파르진 않지만 자전거로 오르기에는 벅차고 길고 긴 오르막이...

우리는 자전거를 탔다 내렸다 하면서 오르막을 올랐다. 차들이 신나게 경적을 울리고 소리치며 응원해주기도 하고 오토바이를 탄 여행자가 '너네 정말 힘들겠구나' 위로하며 지나가기도 했다. 

마지막 젖 먹던 힘을 다해 오르막을 오를 때 석호오빠의 자전거 바퀴에 돌 못이 박혔고 바람이 빠지기 시작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조금 더 남았는데.. 내리막길도 내려가야 하는데.. 일단은 자전거를 끌고 가기로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간 이 길은 정말 힘든 길이었다. 모두들 평지로 이어진 길을 돌아서 오고 있었는데..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래도 우리는 좋다며 음악도 듣고 웃으면서 이 길을 올랐다.

왜 그랬을까.  그땐 그 시간도 마냥 좋고 행복했다. 비를 맞아도 시원하고 행복했다.


고비를 넘어 오르막길 끝에 다다랐을 때 기암괴석의 풍경이 펼쳐졌다. 이걸 보려고 힘들게 올라왔나 싶기도 하다. 저 위에서 맞던 바람의 촉감은 아직도 피부로 느껴지는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의 목적지인 위르굽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리막길만을 남겨둔 우리는 신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보이는 위르굽 표지판

표지판을 보는 순간 감격스러웠다. 드디어 위르굽이라니...!!!!!  10시쯤 출발해서 위르굽에 3시쯤 도착했다.

장작 5시간을 달려왔구나. 우리는 일단 배가 너무 고파서 마을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위르굽에는 터키음식인 '소테'를 잘하는 곳이 있다길래 찾아갔다. 의자에 앉아 숨을 돌리고 음식이 나오자마자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실  때쯤 정신이 돌아왔다.


애플티 한 잔의 여유

밥을 다 먹고 나서야 하늘을 올려다 볼 여유가 생겼다. 터키의 차는 너무 맛있다. 서비스로 티까지 마시고 레스토랑 아저씨가 알려준 자전거 가게를 찾아 나섰다.


터키 현지 자전거 수리방

정말 리얼 현지 수리방.. 센터보다는 수리방이 더 잘 어울리는 곳이다. 타이어를 아예 교체해야 한단다. 다행히 10리라를 주고 타이어를 바꿨다. 정말 다행이다.

그 사이 차이티를 내오시는 사장님. 터키 시골 사람들은 참 마음씨가 좋다. 손님이 오면 항상 내오는 차이티,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이었다.


마침 이 날은 위르굽 토요장터가 열리는 날이어서 과일도 많이 사고 나오다가 발견한 전기구이 통닭도 샀다.

오늘은 도형오빠랑 석호오빠가 파묵칼레로 가는 날이다. 야간 버스를 타기 전에 주린 배를 달래기 위해 우리는 한 보따리의 음식을 사서 마을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은 해지는 풍경이 너무 멋있었지만 고속도로 옆 오르막을 달려야 했다. 오르막을 넘고 나면 또 내리막길이 나오고 마치 우리의 인생 같았다.

힘들었다, 즐거웠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을 대신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 힘든 그 시간도 지나면 분명 오늘처럼 행복한 날도 가득하겠지.


오늘은 어떻게 하루 종일 행복하기만 한지. 비가 와도 햇빛이 나도 타이어 펑크가 나도 엉덩이가 아파도 그냥 마냥 행복했다.  도형오빠와 석호오빠한테 끝없이 말했다. 오늘 정말 행복했다고, 자전거 안 탔으면 어쩔  뻔했냐고. 역시 나는 사서 고생하는 여행이 하고 싶었던 거다.

즐거웠던 자전거 여행도 끝나고.. 우리는 저녁 6시 30분이 돼서야 자전거를 반납할 수 있었다. 착한 사장님은 30분의 추가 요금은 받지 않으셨다. 8시간에 20리라로 깎아서 탄 거 였는데.. 터키는 감동이다.




너무 배고픈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서 바로 치킨을 먹었다. 정전이 된 와중에도 우걱우걱 먹었다. 어찌됐든 도형오빠와 석호오빠가 떠난다. 아쉬워도 너무 아쉬웠다. 정도 많이 들었는데 석호오빠는 이제 한국 가서 봐야 하고 도형오빠는 페티예에서 만나기로 기약하고 두 사람을 보냈다. 


허전하네..

정말.. 


호구커플이 남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건 쉽지가 않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호구커플 숙소에서 또 아바노스 와인을 마셨다. 내가 꼭 아바노스에 가면 체리와인을 사오라고 했더니 술을 좋아하는 그들도 4병을 사왔다. 카파도키아에서는 매일 술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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