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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한 장짜리 인생

인사발령

by 거칠마루

이합집산(離合集散) : 헤어졌다가 만나고 모였다가 흩어짐. 인사이동 때 소방관의 모습입니다. 경기도에 근무하는 소방관들은 1월과 7월이 인사 시즌입니다. 경기도 소방조직은 경기도 소방재난본부와 경기도 북부소방재난본부(경찰로 치면 경기남부경찰청, 경기북부경찰청) 둘로 나뉘어 있습니다. 본부가 둘인 것은 한강을 기준으로 행정구역이 북쪽이냐 남쪽이냐에 따라 나뉘었습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지금과는 달리 1 본부, 2 본부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각 본부 아래에 지역별로 36개의 소방서가 있습니다(지역이 많아서 서너 번을 넘게 세다 보니 숫자가 틀릴 수도 있어요, 헷갈립니다). 보통 시나 군에 소방서가 하나씩 있는데 그중 용인은 용인소방서와 용인서부소방서로, 수원은 수원소방서와 수원남부소방서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안에 화성이 화성소방서와 화성동부소방서로 나뉠 예정입니다. 다들 인구수로 백만이 넘거나 백만이 다 되어가는 도시들이 그 대상입니다. 화성과 용인은 공장이나 창고가 많은 지역이며 또 관할구역이 넓어서 2개의 소방서가 들어서야 했습니다. 수원은 아시다시피 경기도의 중심이죠, 관할구역은 그리 크지 않지만 인구와 건물이 많아서 소방서가 두 곳 있습니다. 아, 그리고 화성은 2위와 압도적인 차이를 벌리며 매년 화재발생건수 전국 1위를 자랑하는 곳입니다. 우리끼리는 우스갯소리로 불의 도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경기도 행정구역, 구역이 넗어 세기 힘들어요!

1년에 두 번 있는 인사시기 중 올해 첫 번째 시즌이 다가왔습니다. 신규 직원들이 8월부터 다음 해 1월까지 교육을 받고 배치되는 1월 인사에는 신규직원들과 기존직원들의 인사비중이 6:4 정도라고 한다면 이번 7월 인사는 순수하게 기존 직원들의 근무지 대이동이 이뤄집니다. 예전에 썼다시피 저는 올 3월에 기존 살던 집에서 약 60km 떨어진 곳으로 이사해 5개월 정도 장거리 출퇴근을 했습니다. 아침 6시 30분이면 집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조금만 늦으면 고속도로가 꽉 막혀서 주차장으로 변해 제시간에 출근할 수 없게 됐습니다. 살짝 막혔다 풀렸다를 반복하며 달리다 보면 1시간쯤 걸려 7시 40분쯤 소방서에 도착하게 됩니다. 3일에 한 번 출퇴근하지만 아무래도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근무하고 싶어 이번 7월 인사에 업무량과는 상관없이 순수하게 집과 가까운 거리 순으로 세 곳의 소방서에 지원했습니다(인사이동 전인 6월 말 희망근무지를 조사합니다. EXCEL 양식에 1순위, 2순위, 3순위의 희망 근무지와 지원사유를 간단히 적어서 제출합니다). 매년 원하는 근무지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 지원지역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게 될 수도 있고 사람들이 없으면 바로 그 지역으로 배치받을 수도 있습니다. 단, 분명한 사실은 지원하면 어디로든 옮긴다는 사실입니다. 대신 그게 어디일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게 흠!!!


인사철이 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임용장 종이 한 장에 누구의 이름이 적혀있느냐에 따라 그 이후의 삶이 달라집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6년이 지나면 지원 여부와 관계없이 소방서를 옮기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지역으로 가는 사람도, 징계를 받아 집과는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가는 사람도, 더 경험을 쌓고 싶어 일부러 힘든 근무지에 자원한 사람 등 그동안 여러 사람들과 같이 근무했다 헤어지길 반복했습니다. 출동을 담당하는 중간 규모 센터의 인원이 구급대를 포함해 28명인데 약 1/4 정도가 새 얼굴로 바뀝니다. 새 사람들과 적응하는 과정이 쉽진 않습니다. 다만 15년 공무원으로 일해보니 제 주관적인 생각은 이상한 사람들(일 못하고 불만이 많으며 동료들과도 어울리지 않거나 아예 독불장군처럼 사는)이 일반 회사에 한두 명이 있다면 공무원 조직에는 최소 10배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회사에서 그런 분들은 쉽게 내쫓기거나 자발적으로 그만두게 되지만 이곳에서 그분들은 젖은 낙엽처럼 바닥에 달라붙어 있으며 철저히 자신을 숨긴 채 옆에 있는 팀원들의 사기를 갉아먹는 존재로 대활약합니다. 그들은 징계를 받을 정도의 잘못은 철저히 피하며 최대한 처벌받지 않는 한도 내에서 본인 일을 남에게 미루던지, 업무를 게을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반면에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에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행동하며 조금이라도 자기 이익이 침범당하면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영악해서 처벌을 받을 정도의 심한 행동을 하지 않으므로 쉽게 제재를 가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어찌해야 좋을지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요즘은 나이와 직급이 높고 낮음을 떠나 세대별, 직급별로 이런 분들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7월 25일부터 새로운 곳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아직 어느 센터에서 어떤 업무를 할지, 그곳에는 어떤 동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선생님으로 정년퇴임한 장모님께서 해주신 유명한 말씀이 하나 생각납니다. 인사발령이 나면 자신보다 자신의 평판이나 소문이 새로운 제 자리에 먼저 앉아있다는 사실입니다. 과연 임용장의 제 이름을 보고 동료들이 어떤 평가를 내릴지 궁금해집니다. 소방관으로 사는 15년 동안 맡은 일은 야무지게 해내는 사람,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는데 그와 비슷한 평을 받을 수 있을까요???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하루입니다.


제목 이미지 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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