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해달 haedal
Feb 19. 2021
Day 26 테이크 아웃 김밥과 종이와 그릇
김밥을 사 오는 두 가지 방법
김밥은 훌륭한 요리라고 생각한다.
한반도의 김은 질이 좋아서 점점 전 세계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 남대문 시장에 가면, 명동에서 화장품이나 옷 쇼핑을 마친 해외 관광객들 특히 일본인 관광객들이 김을 잔뜩 사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남대문 시장에는 가방 가게에서도 김을 팔곤 한다.
흑 _ 그 질 좋은 한국 김을 살짝 불에 굽고,
백 _ 고슬고슬 밥을 펴 놓고( 가게에 따라 흑미밥, 잡곡밥을 넣기도 )
그 위에
청 _ 시금치나 부추
황 _ 노란 절인 무 혹은 계란 지단
적 _ 당근 혹은 햄, 맛살
등을 길게 한 줄로 켜켜이 놓고 대나무 발에 굴려서 싼다.
원기둥의 김밥을 참기름을 바르고, 참깨를 뿌린 후 먹기 좋은 한 입 크기로 썰면, 단면을 누였을 때 음양오행의 오색이 찬란하게 드러나는 아름다운 둥글고 기다란 요리가 탄생한다.
영양면에서도, 보기에도, 먹기에도, 맛에도 크게 부족함이 없는 데다가 그 휴대성과 먹기 간편함이란!
김밥을 제대로 만들려면 이런저런 재료가 필요해서 사 먹는 게 낫다. 한 번에 한 사람이 한 줄 정도밖에 못 먹는데, 김밥은 즉석에서 만들어 먹어야 맛있고 시간이 지나면 상한 데다 냉장고에 넣었다가 데워먹는 그런 류의 음식이 아니어서 한 번에 많이 만들 수도 없다. 그래서 이래 저래 식구가 적고 가까운 분식집이 있다면 사 먹는 편이 나은 것 같다.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0%에 이르고, 2-3인 가구도 늘어나 예전의 4인 가족은 이제 오히려 드물어졌다. 광고에서도 슬슬 4인 가정을 표준으로 삼던 경향이 사라지고 있는 걸 느낀다. 우리 집도 식구가 적고 각자 하는 일이 있다 보니 매 끼 밥을 해 먹지는 않는다.
가끔 브런치가 되는 첫 식사는 김밥과 원두커피. 코로나 이후 zoom으로 강의하다 보니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고 또 대학은 방학이 있어 다소 느슨하게 시간이 흐르는 우리 집은 예전에도 브런치로 김밥을 종종 먹곤 했다.
남편이 동네 김밥집에 가서 김밥 두 줄과 원두커피 더블 샷(현금 결제시 샷 추가 무료)을 사 온다. 이를 위해 작은 손가방에 텀블러를 넣어간다. 중장년 남성의 분위기를 생각해 중후한 색의 하지만 단아한 가벼운 보냉 기능이 있는 손가방을 남편 전용으로 마련해 잘 쓰고 있다.
커피 두 줄과 원두커피 더블 샷 한 잔이면 대략 7천5백 원~1만 원 정도가 든다. 검은색 600ml 텀블러에 받아온 커피 한 잔과 생수, 김치가 있으면 김밥이 더 맛있다. 김밥과 원두커피는 의외로 잘 어울린다.
몇 년 전 김밥을 사 올 때는, 가방이나 텀블러 없이 비닐 봉지에 은박지에 싼 김밥, 그리고 종이컵에 플라스틱 뚜껑 원두커피가 우리 집에 들어왔다. 김밥집에 물어봤다. 혹시 종이 있는지. 있으면 은박지 말고 종이에 김밥을 싸 달라고 요청을 드렸다.
김밥을 은박지에 싸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간편하게 운전하면서 먹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은박지는 형태를 유지하면서 잘 젖지 않으니까. 종이는 초종이를 사용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수분이 염려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김밥은 보통 3시간을 크게 넘지 않는 선에서 먹는다. 10분 안에 먹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운전하면서 뭔가를 하면서 김밥을 먹지도 않을 것같다. 김밥은 유연한 음식은 아니어서 제대로 먹지 않으면 소화가 잘 안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손님 맞추어 해드리기 힘드니 보편화된 알루미늄 호일에 포장하실 듯. 이해는 하지만, 한번 먹고 말 김밥을, 재활용이 되는지 모르겠는 귀한 광물인 알루미늄 은박지에 싸서 먹고 버리는 건 너무너무 아깝다. 사람의 목숨을 살리고 몸의 고통을 덜어주는 병 치료를 위한 기계라든지 등에 사용되면 모를까.
그 광물을 캐내느라 많은 사람이 질병에 시달리고, 광산 붕괴 사고로 돌아가시고, 광산 인근 주민들이 파헤쳐지고 방치된 광산에서 흘러나오는 중금속이 물과 땅이 오염되어 고통을 받는다. 내가 거기 사는 주민이라면 심정이 어떨까.
사장님의 입장을 이해하는 선에서 마무리하고, 종이가 있는 가게에서는 종이에 싸 달라고 하고, 종이가 없는 가게에는 그릇을 가져가기로 했다.
우리 동네에 주로 가는 김밥집은 두 곳이었다. 한 곳은 오이를 많이 넣어 청량감이 있고 조금 더 고급지고 가격도 조금 더 받는다. 이 곳에는 종이를 비치해두고 있는데, 우리 집 말고 다른 손님에게는 알루미늄 은박지로 김밥을 포장해준다. 우리 집은 말하자면 스페셜 게스트이다. 성가시겠지만 꾸준한 단골이니 신경 써서 으례 그렇게 요청한 대로 해주신다.
다른 김밥집은 종이가 없다. 가격이 일반 김밥집 가격이고, 조금 더 촉촉하다. 부추를 넣어서 김밥이 금방 상하지 않고 맛있다. 부추 많이 든 김밥이 먹고 싶을 때는 이 가게에서 사고, 가방과 텀블러 외에 김밥을 담을 그릇을 가져간다. 안타깝게도 이 가게의 사장님이 작년, 놀랍게도 코로나가 본격화되기 직전에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동안 상당한 기간 이렇게 사 먹었으니 사용하지 않은 플라스틱, 절약한 지구 자원이 제법이다.
수 십 장의 비닐봉지
수 십 장의 은박지
수 십 개의 나무 젓가락
수 십 개의 나무 젓가락을 싼 비닐/종이
수 십 개의 원두커피 종이컵
수 십 개의 플라스틱 원두커피 컵 뚜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