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 외투 말고, 종이 외투 주세요.
졸업시즌.
작년에 받은 꽃다발의 꽃은 시들어 드라이플라워가 되어 말라 없어져 가는데,
꽃다발을 쌌던 비닐은 그대로이다.
꽃다발을 받아서 집에 오면 화병에 꽂으니 비닐은 버리게 된다. 졸업 시즌에 등장하는 그 많은 꽃다발과, 그 꽃다발의 꽃보다 양이 더 많을 것 같은 비닐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내가 꽃다발 살 때의 마음을 되짚어보았다.
축하의 기분을 북돋우기 위해서
잘 차려입고 나갈 때, 화장을 하고 액세서리로 빛을 더 하는 그런 강화 효과가 있다. 한마디로 분위기 업.
남들만큼은 하고 싶어서
다들 화려하고 풍성한 꽃다발을 주고받는데, 주는 사람 입장에서 소박한 꽃다발은 소박하고 간결미가 돋보이기보다 너무 소박해 보일 수 있다.
비닐 포장은 왜 하는 걸까?
꽃값이 좀 한다
집에 화초를 길러보니 꽃을 피우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꽃값이 비싼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꽃집에서는 짧은 꽃의 수명때문에 새벽 일찍 꽃 시장에서 꽃을 사 오는 남다른 노력의 발품과 예술성을 겸비한 꽃다발이나 꽃바구니 포장을 해서 판매하니, 꽃은 비쌀 수박에 없고, 소비자는 귀한 꽃에 당연히 값을 제대로 쳐줘야 한다.
보통은 꽃다발 선물을 받기보다 준 적이 더 많을 것이다. 관계 맺고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횟수가 더 많을 것 같다. 내 삶에서 꽃다발을 받을 일이 그렇게 많진 않다. 반면 관계 맺고 있는 사람은 가족, 친지, 친구, 동기, 동료 등... 더 많으니 줄 일이 더 많다. 그런데 꽃은, 값이 많이 싸지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공산품에 비해 금방 시들기에 더더욱 상대적으로 더 값비싸게 여겨진다. 포장을 통해 꽃다발의 예술성, 풍성함을 키울 수 있다. 같은 가격으로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다.
비닐은 싸고, 색과 재질이 다양하고, 모양을 만들기 좋고, 수분 방어력이 있다.
꽃을 비닐에 싸는 이유는 꽃에 수분이 있어서라는 이유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두 번째는 비닐이 안타깝게도 종이보다 더 싸다는 말도 안 되는 어처구니없는 현상. 사실 비닐, 플라스틱은 그 오염 비용을 생각하면 종이보다 10배는 더 비싸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이가 100년을 간다면, 비닐은 1000년을 간다. 당연히 10배 더 비싸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생산비용만 감안이 되어 비닐은 너무나 싸다. 안타까운 사실이다. 플라스틱, 비닐을 우리가 해산물을 통해 꾸준히 섭취하는데도 말이다.
비닐은 또 종이에 없는 광택이 있고, 투명성도 담보하고 있으면서, 여러 가지 색을 내기도 쉽다. 가볍고 사용하기도 좋아서 여러 가지 비닐에 플라스틱 끈으로 포장하면 매우 화려해진다. 쉽게 얻는 화려함이다.
반면 꽃의 화려함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꽃은 피우기 어려웠다. 집에서 화초가 꽃을 피우려면 이런저런 노력이 든다. 꽃은 한 송이라도 그것 하나 만으로도 얼마나 어렵게 꽃을 피웠는지 온 몸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런 귀한 꽃에 썩지도 않고 터무니없이 값싼 비닐이라니, 가만 생각해보니 격이 맞지 않는다.
나는 언젠가부터 꽃을 살 때 비닐 포장을 최소화했다. 이를 테면 꽃집에서 물주머니를 만들어줄 때라든가, 꽃대의 아랫부분이 젖어 있어서 종이가 찢어질 우려가 있다든가 할 때 한 장 정도 허용한 적이 있었다. 집에 와서 아랫단을 조금 잘라내고 꽃병에 꽂으면 다시 싱싱해진다. 비닐 물주머니는 필요하지 않다. 필요하다면 그런 꽃은 취급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아예 비닐 물주머니가 필요한 꽃은 선택하지 않는다.
며칠 못 가지만 그래서 꽃은 더 아름답다. 플라스틱 꽃이 해를 넘겨 그대로인 것을 보면, 지겹고 무섭다.
꽃집에는 종이 포장지가 다양하지 않아서 비닐 포장지에 비해 화려함이 훨씬 덜하다. 그런 제약에도 반드시 종이 포장지가 있냐고 물어보고 종이를 선택한다. 의외로 꽃이 더 돋보인다. 빤짝 거리는 비닐 포장에 가려져 있던 꽃의 면면이 입체적으로 확 살아난다. 한 송이 한 송이 더 귀해진다.
꽃집에서 꽃을 고른 후 꽃다발을 쌀 때, 종이에 싸 달라고 주문하지 않으면 비닐이 자동으로 등장한다.
나는 그래서, 꽃다발을 주문할 때
종이에 싸 주세요
꼭
말을 한다.
단골 꽃집이 있는데, 한 두 번 그랬더니 내가 가면 으레 종이에 포장해주신다.
델리스파이스, 내가 찾는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