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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LL Dec 01. 2021

가능성 있는 상태로만 남고 싶었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때마다 늘 그랬다. 무언가 도전했을 때 실패가 두렵고, 내가 처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성공한 뒤를 상상만 하면서 나는 그저 가능성 있는 상태로만 남고 싶었다. 하지 않으면 성공도, 실패도, 내가 원하는 모습도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음에도.


*


 다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새로운 장르의 글을 쓴다. 한동안 에세이만 쓰다가 그 장르를 쓰는 것은 내게 너무나 낯설고 어색한 일이라, 쓰고 있으면서 이게 맞는 건지 점점 자신감이 없어진다.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은데, 여전히 내 글은 우울하고 재미없는 글인 것만 같다. 나는 다시 아이 핑계를 하며 숨는다. 종일 아이를 보느라 시간이 없어서 못 쓰는 거지, 시간만 있으면 다 쓸 수 있어. 아이를 보느라 체력이 달리니까 오늘은 쓰지 말자. 오늘은 손가락을 다쳤으니까 내일로 미루자. 오늘 하루만, 오늘 하루만 더... 그런 날들의 연속. 처음에 시작할 때는 의욕 넘치게 쓰던 걸 그새 잊어버린 걸까.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이 그립다.


*


 달력에 매일 글쓰기, 운동, 책 읽기를 표시하고 있다. 어느 주는 글쓰기가 1회였다가, 지난주는 5회가 되었다. 오늘도 글쓰기 항목에 체크를 해야 하는데, 노트북을 켰는데 글을 쓰고 싶지 않아 잠시 딴청을 피워본다. 내 책상 오른쪽에는 속옷장이 있는데, 낮에 아이가 열어서 잔뜩 꺼내어 놓아 엉망이다. 왼쪽에는 개야 할 아이 옷이 한가득하고, 그 뒤의 건조기에도 어른 옷이 잔뜩 있다. 나는 글을 쓴다는 핑계로 집안일로부터 도피해본다. 글을 써서 성공하면 집안일에 몰두하지 않아도 돼. 달콤한 속삭임이 아른거린다. 나는 그렇게 또 숨고, 도망치는 삶을 살고 있다.


*


 오늘은 몇 자나 쓸 수 있을까? 아니, 어떤 재미있는 문장을 뽑아낼 수 있을까? 내게 그런 능력이 있기는 한 걸까? 내가 창조하는 나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뻔하고, 지루하고, 전형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글을 쓰고 싶지 않다. 그저 상상만 하면서 '가능성 있는 존재'로만 남고 싶다. 모두가 그런 걸까, 나만 그런 걸까. 모두가 그런 건데 그걸 이겨내며 사는 거면 좋겠다. 그럼 덜 억울하니까. 즐기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생각하면 너무나도 샘이 나고 질투가 나니깐. 모두 나 같은 게으른 생각을 하고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참 이기적인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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