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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한 휴가 Oct 04. 2022

대사관이 없는 나라에 산다는 것

 

내가  계기로 리투아니아서 살게 되었는지는 리투아니아 사람들에게도 늘 호기심의 대상이다. 16년 전에 처음으로 리투아니아에 왔었다고 하면 현지인들의 반응은 보통 이렇다.


'16년 전이면 우리나라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와서 뭐했어??'


와서 여행했다. 그리고 2년 후부터 살기 시작했다.


이 질문은 마치 40년 전에 한국에 와서 살았다는 외국인에게 그때 통금시간 어기면 막 잡아가고 장발하면 머리카락 잘리고 그랬는데 그때 와서 뭐했어? 의 뉘앙스로 들리지만 이런 질문을 하는 리투아니아인들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한다.


리투아니아가 소련에서 독립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94년 빌니우스의 구시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004년에 유럽연합과 나토에 가입했고 2015년부터 유로화를 쓰기 시작했다. 외국의 자본이 물밀듯이 밀려오며 리투아니아에 변화가 시작되는 순간에 나는 이곳에 터를 잡았다.    


간혹 2006년 처음 빌니우스를 여행하던 때의 사진을 보면 정말 황량하기 짝이 없다. 16년 전에 리투아니아에는 어떤 의미에서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 정말 맞다. 근데 지금도 여전히 없는 게 많다. 그중 하나가 대사관이다.


리투아니아에는 한국 대사관이 없다. 관련 영사 업무는 주 폴란드 대사관에서 관할한다. 예전에 관할 대사관이 덴마크였던 것을 생각하면 그래도 육로로 갈 수 있으니 사실 엄청 편해진 것. 리투아니아에서 14년을 살았지만 아직까지 대사관에 갈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첫 해 거주권 신청에 필요했던 서류들은 이미 한국에서 준비해온 상태였고 여권은 기한이 조금 남아있어도 한국에 갈 때마다 연장하거나 재발급받곤 했다.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재외국민 선거에는 참여할 생각조차 못하고 살았다.


 얼마 전 아이들의 출생 신고를 우편을 통해 처리하면서 대사관이 없는 나라에 사는 것에 대해 14년이 지나서야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국의 서류 명칭들도 나에겐 너무 생소하고 우편으로 보내는 서류의 작성에 실수하지 않으려니 대사관 직원분께 메일로 묻고 또 물으며 참으로 성가시게 해 드렸다. 대사관이 없는 나라에 산다는 것. 그것은 불편한가? 처리해야 할 일이 생기면 당연히 불편한 게 맞다. 그렇다면 대사관이 생겼으면 좋을까? 하면 미묘하게 그건 또 아니다.


리투아니아의 이웃나라인 폴란드와 라트비아에 한국 대사관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 교민 수도 적고 교역도 적은 리투아니아라는 소국에 굳이 대사관을 추가로 만들지 않는 것이 납득이 된다. 그런데 얼마 전 한국에 리투아니아 대사관이 생긴 것을 생각하면 또 빌니우스에도 언젠가 한국 대사관이 생기려나 싶다. 하지만 꼭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좋다.


연초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대사관 직원들과 현지 교민들의 대피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대사관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현지에 남겠다는 소수 교민들의 이야기에 눈길이 갔다. 업무나 학업으로 일정 기간 임시로 주재하는 것이 아닌 현지에서 가정을 꾸리고 오래전에 뿌리를 내려 떠나는 것이 각만큼 쉽지 않은 사람들일 거라 짐작했다. 그것이 아무리 전쟁이라는 급박한 상황이라고 해도 밑바닥부터 일군 삶의 터전을 떠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위기라는 것이 정말 목전에 닥치지 않는 한은 불행은 늘 나를 비껴갈 것만 같은 희망과 확신도 동시에 거느린다. 


그런 것들이 그들을 그곳에 남게 했을 것이다. 금까지 잘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래야만 한다는 확신. 예외는 있을 수 없고 이곳이 아닌 피난처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저 여기서 이들과 함께 잘 살아남아야 한다는 확신 말이다. 빌니우스에는 위기 상황에서 날 어딘가로 데려가 주겠다는 사려 깊은 대사관도 없지만 그런 기회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아마 나 역시 이곳에 그대로 남는 것을 택할 것 같다. 물론 그런 불행한 상황은 생기지 않길 바란다.


지난달에 볼일이 있어서 바르샤바의 한국 대사관을 방문했다. 대사관이 몰려 있는 외국 동네들 특유의 한적하면서도 무뚝뚝한 공기가 흘렀다. 방문 예약 증명서와 여권을 제시하니 한참이 지난 후에 문을 열어줬다. 조금은 긴장한 채로 문을 열고 들어선 공간은 한국의 동사무소처럼 정겨웠다. 8시간 야간 버스를 타고 한국을 체험하러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직원들이 지갑을 들고 점심을 먹으러 나갈 것 같은 풍경이 눈앞에 그려졌다. 한 시간 가량 한국말을 하고 한글을 쓰면서 그곳이 바르샤바였다는 것도 잊었다. 익숙하지 않았으니 신선했고 긴장된 순간이었지만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


 빌니우스에 대사관이 없어도 그리 나쁘지 않다. 정말 결정적인 순간에 날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 모른다. 아무런 보호막도 없이 온전히 혼자 낯선 곳에 내던져진 듯한 이 느낌에서 묘한 안락함을 느낀다. 내가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내가 능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바르샤바에 가면 된다. 볼일 본다는 핑계를 대고 독일에 사는 친구와 바르샤바에서 만날 수도 있. 없으면 없는 대로 좋다. 뭔가가 아예 없으면 예감해야 할 불행도  없다.  려움 없이 선입견 없이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이곳에서의 삶이 아무것도 없는 그 무언가의 위에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고 느낀다.


나저나 다음에는 바르샤바로 꼭 선거하러 가야겠다. 대사관에서 돌아오는 길의 철교 아래에 있던 한국 치킨집에도 또 들르고 싶다. 친구도 만나고 쇼팽도 만나고 코페르니쿠스도 또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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