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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한 휴가 Oct 30. 2022

리투아니아의 못 말리는 사과 사랑

늦가을이면 사과를 나누는 사람들



10월이 되면 리투아니아는 한창 추운 겨울 때보다 집안 온도가 더 내려간다. 10월 중순 즈음 드디어 난방이 시작되고 10월의 마지막 일요일에는 서머타임이 면서 축축하고 백했던  비로소 피가 돌 한국과의 시차는 6시간에서 7시간으로 늘어난다. 난방의 시작 맞물려 돌아가는 시계태엽 올해도 변함없이 우리가  겨울로 들어섰음을 알려다. 



전시된 사과


길을 걷는데 상점 창가에 덩그러니 놓 사과가 보다. 아직은 걸어가면서 장갑 안 낀 손으로 사과 베어 먹을 수 있는 너그러운 날씨란 소리이기도 하고  시기의 리투아니아의 넘쳐나는 사과를 짐작 한다. 다 먹은 사과를 거리 한 구석에 전시해 놓은 사람 아마 식탁에 놓여있는 사과 장 온전한 하나를 집어서 옷자락에 슥슥 닦아  나섰을 것. 사과를 레기통 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람들은 사과의 마지막 모습 훌륭한 정물 남겨두고 싶었던 걸까. 유난히 빌니우스 거리에는 먹고 버린 사과들이 많다.



가져가도 좋아요


세상 어디서나 사과는 가장 흔한 과일이 리투아니아서도 그렇다. 그렇긴 해도 리투아니아인의 사과 사랑은  유별나다. 겨울이 길고 재배 작물이 다양하지 않 리투아니아에서 사과는 전한 형태로 장 오래 곁에 둘 수 있는 비타민의 원천이다. 사과나무는 투아니아 사람들이 여름 보내는 여름 별장의 줏대감이 마당이 있는 가정집이라면 대부분 사과나무 한 그루 정도는 운다.


에 최소 대여섯 종의 수입 사과들이 있지만 반질반질하고 상처 하나 안 난 그 똑 부러진 외관 '밀랍'사과는 별명이 붙는다. 우리 앞 집 할머니는 와인 따개가 없으신지 매번 손님이 올 때마다 와인을 따달라고 초인종을 누르시는데 그때마다 고맙다며 초콜릿과 사과 몇 알을 손에 얹어주신다. 리투아니아의 나이 지긋신 분들은 사과는 돈 주고 사 먹는 거 아니라고 혼신다.



사과와 나뭇잎

 

10월 중순은 겨울 동안  놓고 먹을 사과 따기 가장 좋은 시기이다. 떨어진 사과는 저장용으론 적합하지 않으므로 아직은 게으름을 피우며 매달려있는 사과들을 잘 구슬려서 종이로 하나하나 싸거나 굵은 톱밥과 섞어서 관한다.



첫서리가 내리는 겨울의 초입까지 가장 오래 나무에 매달려있어서 한 겨울까지 놔두고 먹는  리투아니아에서는 안타니니스 사과 Antaninis obuolys라고 부른다. 리투아니아 남성 이 안타나스 Anatanas서 유래된 명칭 러시아 이름으로 치면 안톤에 해된다.



 러시아 작가 이반 부닌 쓴 <안토노프의 사과> 짧은 단편 소설이 있다.  여름부터 초겨울까지 변해가는 러시아의 시골 풍경이 농노제 폐지 전과 후의 러시아의 풍경과 맞물려 세밀하고도 목가적으로 묘사되어 있. 리투아니아의 시골 풍경도 19세기 말 러시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토노프의 사과란 리투아니아의 안타니니스 사과와 동일한 품종인데 소설은 안토노프 사과 향기가 가득한 소지주의 농장에서 다음날 장에 내다 팔 사과를 따는 인부들 그리며 시작된다.  밤새 사과나무를 일부러  흔들어서 사과를 떨어뜨리고 도망가는 고약한 사람들 험담기도 하고 사과를 부지런히 따서 밤새도록 마차를 타고 장으로 가는 가을밤 정취를 기대하는 느낌도 전해진다. 돈이 되는 사과이지만 인부들이 일하면서 사과를 먹어도 지주는 뭐라고 하지 않는다. 주와 하인의 구분 없이 두가 함께 맞이할 혹독한 겨울을 앞둔, 그것은 일종의 가을과의 작별인사이기에.



사과가 눈물을 쏟아내는 시간


 도시에 사는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마트에서 돈을 주고 사과를 사 먹지만 시골집에 다녀오는 친구들이나 건너 건너 지인들이 사과를 챙겨주는 10월우리 집도 과 풍년이다. 과일 그물망에 낱개로 정성스레 포장돼서 선물용으로 도착하는 사과들이 아니라 대바구니에 나뭇잎과 함께 뒤엉켜있는 상처 나고 벌레 먹고 모양도 색상도 불규칙한 정직하기 짝이 없는 리투아니아산 사과들이다. 사과 선물을 받으면 우선은 상태가 안 좋은 것들을 골라서 잼을 만들고 나머지 사과는 냉장고 들어간다. 



겨울을 위한 사과잼들


그러니 이즈음의 부엌은 달짝지근한 사과 냄새득하. 사과는 시나몬과 정향, 설탕을 만나 여름 동안 품고 있던 수분을 땀과 눈물처럼 다 토해 후 오트밀이나 메밀, 세몰리나 같은 곡물의 포리지를 장식하고 달달한 사과 크럼블도 만들어낸다. 팬케이크에도 돌돌 말아먹고 가끔은 고기 요리에도 곁들인다. 거운 와인에도 들어가는 시나몬 스틱과 정향은 사과에 의 향기를 입힌다.



친구의 시골집 사과


프랑스인 세잔은 캔버스 위에 수십 알의 사과를  영국인 뉴턴은 떨어지는 사과에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만들었다지. <개선문>의 라빅은 칼바도스를 사랑했고 미국인 잡스는 애플을 세웠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던 철학자는 또 어떤가.


 리투아니아에는 '사과는 사과나무에서 멀리 굴러가지 않는다. Obuolys nuo obels toli nerieda'는 담이 있. 부모의 특성을 꼭 빼닮은 사람들에게 칭찬하거나 핀잔주고 싶을 때 주로 내뱉는 말. 사과나무에서 배가  열릴 수 없듯이 우리가 부정하기 힘든 부모로부터 전해받은 유전적 특질을 나무 아래로 곧게 떨어져서 그대로 머무는 사과에 빗대어 설명한다. 리투아니아 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널리 퍼져서 쓰이는  표현이지만 리투아니아에서만큼 그 표현이 입에 착착 감기는 곳이 또 없다.



창고 지붕 위에서 자연 건조되는 중의 사과.


  떨어진 채로 고스란 익어가고 썩어가 짓밟혀서 형체를 잃어가는 사에서 탄생과 성장과 죽음의 과정 다. 거리에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사과나무은데 사과가 많아도 너무 많으니 거의 쓸모없는 수준에 이르러 비명횡사하는 모습이 처연하기까지 하까. 



그러니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사과의 마지막 가는 길이 최대한 의미 있고 아름답기를 바라며 사과를 나눈다. 유치원 계단에도 방생하고 연립의 현관에도 레스토랑의 입구에도 상자 채로 놔둔다. 치원생들의 손에는 늘 손바닥에 딱 들어찰만한 조그마한 사과가 쥐어져 있다. 매년 이맘때면 사과 조림 레시피가 인터넷 공간을 여름의 유령처럼 맴돈다. 오랜만에 전화통화를 한 친구도 사과가 필요하지 않냐고 묻는다. 대한 버려지는 사과 없이 모두에게 사과가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 늦가을 사과도 덩달아 바빠진다.



'로얄 애플 Karališkas obuolys'


 구시가를 중심으로 빌니우스를 거닐다 보면 사과나무에서 떨어져서도 한 참을 먼 곳까지 굴러가 자리 잡은 돌연변이 같은 사과 몇 알 만날 수 있다. 


빌니우스네리스 강 Neris을 가로지르는 지르무누 다리 Žirmūnų tiltas 아래에 무려 지름이 5미터 달하는 스테인리스 스틸 사과가 매달려있다. 이 사과는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의 독립 20주년을 기념해서  '빌니우스의 기호 Vilniaus ženklas'라는 테마로 만들어진 6개의 조형물 중 하나이다.



강물에 비친 사과


재밌는 사실은 이 사과를 원래 빌니우스의 대성당에서 가장 가까운 민다우가스 다리 Mindaugas tiltas에 설치하려고 했었는데 다리를 만든 엔지니어가 다리는 그 자체로 철저하게 계산된 균형 잡힌 예술작품이기 때문에 예술 위에 예술을 얹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한다. 듣고 보니 참으로 옳은 말이 아닌가. 하지만 어쨌든 이 사과는 성공적으로  다리에 안착했다. 이 다리의 미감이 거절당한 다리의 그것보다 좀 떨어다는 것을 생각하니 평범했던 다리가 사과로 인해 조금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이 스테인리스 스틸 사과는 국가 리투아니아의 시작을 상징하고 14세기에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이교도 국가에 탈피해 서유럽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시기를 되새기자는 의미도 있다.



'사과 Obuoliukas'


그런가 하면 빌니우스의 구시가 한복판에는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만남의 장소를 상징하는 사과 타일 있다. 성당 근처에 자리 잡은 작은 공원 속 놀이터라 아이들이 노는 소리에 항상 왁자지껄하다. 공인된 만남의 장소이니 연인들도 자주 찾는다.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모른 채 지나갈 수 있다.


사과 속에 새겨진 심장의 흔적은 새로운 사랑의 시작에서 두근두근 따뜻해지는 두 사람의 마음을 오묘하게 연결하고 있다. 하지만 사랑의 시작달콤한만큼 그 쓰디쓴 과정과 결말도 결국은 함께 나눠가진다는 생각에 가슴이 시려온다. 쩌면 그 상처를 그나마 함께 나눌 수 있으니 더 단단해진 가슴으로 바보처럼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걸까? 이 사과를 지르밟고 가는 이들에게 그 순간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시간이 지날수록 빌니우스의 사과 타일은 사랑이 이루어지는 타일, 헤어진 연인이 다시 돌아오는 기적을 일으키는 타일 같은 의미들을 획득하며 명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사과나무 Obelis'


사과 타일의 거리에서 좀 올라가 걷다 보면 심지어 황금 사과나무도 한 그루 있다. 그런데 유리 담장 너머 사과를 보고 있으면 러시아 민담 <황금 사과와 불새>가 늘 떠오른다. 내용이 대충 이렇다.


궁에서 자라는 황금 사과가 매일 없어지자 왕은 세 왕자에게 범인을 알아오라고 명령한다. 셋째 왕자 이반이 황금 사과를 훔쳐가는 도둑이 불새임을 알아내자 왕은 또 그 불새를 찾아오라고 . 불새가 또 날아와서 황금사과를 훔쳐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여행 중에 만난 회색 늑대를 타고 그 불새를 찾으러 다른 왕국에 간 왕자는 늑대가 건드리지 말라고 한 황금 새장을 건드려서 붙잡히고 다.  그 왕국의 왕은 또 다른 왕국에 가서 황금 말을 가져오면 용서해주겠다고 하니 황금말을 찾으러 갔다가 건드리지 말라는 황금 굴레를 건드리는 바람에 붙잡히고 공주를 데려오면 용서해 주겠다는 말에 공주를 데려오다 사랑에 빠 그 공주를 잃기도 하지 제들의 질투를 비롯한 갖 역경을 극복하고 공주와 맺어지는 이야기.


사과 장식의 공예품


 리투아니아 전래 동화에서 황금 사과는 번영과 행운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남의 마당에 심어진 이 고고한 황금사과를 보면  슨 이유인지 반 왕자를 고으로 몰고 간  황금사과를 떠올리게 된다. 자식이 황금사과를 찾은 범인을 찾아낸 걸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사지로 몰아넣는 부모, 왕자의 약점을 이용해 자신들의 탐욕을 취하려는 다른 왕국의 왕들, 부모의 지침을 성실하게 수행하지만 역시 많은 유혹을 떨쳐내지 못해 스스로 궁지  이반 왕자, 차라리 황금 사과가 없었더라면 누구의 마음도 욕망으로 고통받지 못했을 텐데 말이다. 


고급 빌라 속에 자리 잡은 접근 할 수 없는 황금 사과에  불새처럼 질투를 느끼고 있는 걸까. 결국 저 황금사과가 보이지 않는 깊은 곳의 내 욕망도 건드리는 것인지 여러모로 이 황금사과는 내게 있어서 가장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빌니우스의 사과로 다가온다.  



'녹색 사과 Žaliasis obuolys'


이것은 빌니우스의 가장 무거운 사과가 아닐까 싶은데 무려 인도에서 공수해온 8톤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이 사과는 온갖 문제점과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는 '골칫거리 시장'이라는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돕고 그들을 위해 희생정신을 발휘하는 자선가들의 선행을 격려하고 본보기 삼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과 정면을 보면 잘린 단면에 기부자들의 이름이 적혀있는데 리투아니아 대공국 시절 도시의 번영을 위해서 성당이나 학교를 지을 때 기부에 앞섰던 귀족들의 이름부터 빌니우스의 자선 단체와 유명인사들의 이름이 알파벳순으로 적혀 있다.


빌니우스는 도시의 60퍼센트 이상이 녹지이고 나무가 많은 만큼 곳곳에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은데 그런 공간에 놓인 많은 조형물들이 그 자체로 그 장소의 명칭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리투아니아인들에게 사과 앞에서 만나자고 하면 '어떤 사과?'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난 빌니우스의 8톤 화강암 사과를 제일 좋아한다. 에서 제일 가깝고 오며 가며 이곳 벤치에 앉아 비둘기에게 밥을 주며 들이킨 커피가 수십 잔이기에.


아직 끝나지 않은 가을, 10월의 빌니우스 거리를 걸으며 리투아니아인들의 사과 사랑다시금 느껴본다. 다가오는 겨울이 따뜻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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