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형 컬렉터는 앞으로 누구를 믿어야 하나
이별 이후 나에게는 또 다른 인연이 찾아왔고 서로를 알아가는 짧은 한 달 남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나란 사람은 처음은 매우 조심스럽고 의심이 많지만 이미 한번 마음을 열었을 때는 비교적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 무심하고 차갑다는 말을 종종 듣는 나 같은 사람은 표현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라 상대방이 느끼기에는 턱없이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중에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의 노력을 다한다. 노력을 했음에도 부족하게 느낀다면 서로가 맞지 않은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만났던 대다수 사람들이 지금 생각해 보면 모두 회피형에 가까웠다. 우연인지 아니면 내가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남자들의 대다수가 회피형인지 아직도 그 답을 모르겠다. 나도 희피형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보통의 여자들보다는 차분하게 받아들이고 그들을 이해하는 편이었다.
그들이 회피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첫 번째는 어떤 이유로든 본인이 감당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두 번째는 직접 표현하기에는 무서운 거절의 마음 둘 중 하나다.
회피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이유는 상대방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상대방이 추측해야 하는 것, 그 추측이 맞는지 틀렸는지 영원히 알 수 없고 가능한 경우의 수를 상상한다면 끝도 없다는 것. 상대방을 믿는 크기만큼, 기대한 만큼 상대방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자꾸 나를 속이게 된다. 끝없는 추측과 난무하는 합리화.
내가 회피형 인간을 마주하는 당사자가 되어보니 이건 나 같은 감정의 동요가 크게 없는 사람에게도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이성적으로는 회피형을 손절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답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감정은 한순간에 끊어낼 수 없으니 온갖 상상을 하면서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을 상황이라고 합리화하면서 기다리게 되는 것이 사람 마음.
회피를 선택했던 사람들 중에서 세명 중 두 명은 한참 뒤에 다시금 연락을 해왔는데 내 마음은 항상 이미 떠나버린 후였다. 시간이 흐르면 다시는 선택하지 않을 최악의 사람으로 남게 되는 사람이 바로 회피형 인간인 것 같다. 그동안의 좋은 추억들은 다 잊히고 무책임함에 대한 원망과 부정적 감정이 먼저 생각나버린다. 언제든 또 답답한 망상 감옥에 가둬두고 혼자 도망가 버릴지도 모른다.
매번 새로운 시작할 때마다 마지막 인연이길 바라며 기대감을 갖고 시작하기에 내 인연이 아니었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큰 실망감을 주고 포기하고 싶은 좌절감에 놓이게 한다.
하지만 그동안 배운 것은 이어질 인연은 이어질 것이고 한 사람이 떠나가는 것은 또 다른 인연이 올 것이라는 뜻임을 이제는 안다.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내 삶에 충실하면서 소중한 내 시간을 나의 가치를 올리는데 쓸 것이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 더 좋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자.
지나간 것은 잊고 새로 나아가는 것이 유일한 내 선택지이다.
ps) 그럼에도 아직 남은 풀리지 않은 의문
남자들이 모두 회피형이라면?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빠를지도 모른다.
어차피 다 똑같다면 그들을 거르는 것이 맞을지? 그러다가 내 시간이 다 흐른다면?
어차피 돌아올 텐데 그때는 받아주어야 하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