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모종의 맥락이 있을 때 의미를 갖는다. 정범모는 교육이란 ‘인간행동의 계획적 변화’라고 정의하였다. 이 정의에는 정범모가 모종의 의미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분명히 함의되어 있을 것이며,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 또한 들어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정범모의 개념에서 드러난 문제의식은 무엇인가? 이것은 당시 한국 교육의 무기력함에 대한 상심과 교육을 받은 후에도 학생에게 전혀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이다. 그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교육의 개념을 규정함으로써 교육이라는 활동이 무기력한 활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했다. 즉, 그는 교육 개념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체계적으로 계획한다면, 교육은 인간행동을 강력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정범모가 정의한 교육 개념에는 세 가지 중핵 개념인 ‘인간행동’, ‘변화’,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먼저 교육이란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인간을 기르는 일이다. 행동은 교육이 대상으로 하는 인간의 측면을 의미하는데, 저자는 ‘교육은 인간을 기른다’에서 인간의 의미는 인간행동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하였다. 인간행동은 과학적인 의미에서 사용되는 용어이며, 외현적인 행동과 내면적인 행동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둘째, ‘변화’란 육성, 조성, 함양, 계발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셋째, ‘계획’은 변화시키고자 하는 인간행동에 대한 교육목적, 교육이론과 교육과정을 포함하는 것으로 구체적인 교육프로그램을 뜻한다. 종합하여, 정범모에 따르면 교육은 인간행동을 변화시키는 활동이지만 ‘계획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때만 교육으로서 강력한 힘이 생기는 것이다.
한편 정범모는 1960년대 이후 한국에서 교육 개념과 교육학을 체계화하는데 선구자라고 인정받고 있다. 우리가 현대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주석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현대 한국 교육학은 정범모가 체계화한 교육학에 대한 주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범모가 제시한 교육의 개념과 교육학 체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만한 것인지에 대해서 고찰해 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범모의 교육의 정의 중 문제의식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계획’에 대해 잘 살펴보아야 한다. 정범모의 교육 개념에 있어서 ‘계획’이라는 준거는 교육과 교육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준거로 작용하며, 교육학의 학문 성립기반이 된다. 또한 교육은 계획을 통해 인간행동의 변화가 관찰되어야 한다고 하였으며, 그 변화를 일으키려는 의도의 유무보다는 변화가 결과적으로 발생하였느냐가 중요하다고 하였다. 이처럼 정범모의 교육 개념에서 ‘계획’이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지므로, 필자는 이를 중심으로 교육의 개념을 비판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였다. 이것은 교육이 인간행동을 ‘계획적’으로 변화시켜야만 교육으로 불릴 수 있는가에서 출발한다.
첫 번째 문제제기는 ‘교육이 인간행동의 계획적인 변화로 규정되어야만 하는가’이다. 즉 우리는 ‘인간행동이 계획적으로 변화되기만 하면 모두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두 번째 문제제기는 ‘계획하지 않은 경우에도 지속적인 행동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면 그것은 교육으로 부를 수 있는가’이다.
첫 번째 문제제기에 대한 근거로 다음의 두 가지 경우 제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예시는 바람직하지 않은 인간행동의 계획적 변화이다. 예를 들어 테러리스트를 양성하기 위해서도 정범모가 말하는 계획이나 교육프로그램이 존재할 것이며, 여기에는 교육목적, 교육이론과 교육과정이 모두 포함되어있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계획이나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테러리스트가 양성되었다면, 이것 또한 인간행동이 계획적으로 변화된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 같이 바람직하지 않은 인간행동의 계획적 변화를 ‘교육’이라고 말하는 것은 주저할 것이다. 이것은 ‘교육’이라는 것이 적어도 좋지 않은 뜻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로는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혹은 약사가 처방을 할 때, 환자의 질병을 치유하기 위한 목적에 맞는 이론과 체계적인 계획을 통해 고치려고 할 것이다. 이 경우에도 인간행동이 계획적으로 변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육’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두 가지의 경우 모두 공통적으로 인간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계획을 세우고 실제로 변화가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모두 교육이라 부를 수는 없다.
두 번째 문제제기에 대한 근거로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가정할 수 있다. 학생들이 도덕적인 인성을 함양하도록 인간행동을 변화시키는 활동으로 도덕교과를 가르친다고 할 때, 학생들은 계획에 따라 변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계획적인 상황이 아닌 우연한 계기를 통해 도덕적 성품이 길러질 수도 있다. 계획하지 않은 경우에도 지속적인 행동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으며 이러한 행동변화도 충분히 교육적인 효과를 가진다면, 이 또한 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아닌가에 대해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홍우 저자는 필자가 가진 위의 두 가지 의문에 대해서 결정적인 답변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자가 1장에서 교육의 상이한 양상은 각각 상이한 문제의식을 반영한다고 하였다. 정범모 정의는 교육의 총체 중 하나의 교육 양상을 나타내는 것이며, 정범모의 교육 개념을 통해 정의가 되지 않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교육의 또 다른 양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저자는 성취동기 육성과정에 대하여 ‘한 개인에게 성취동기 채점방법을 가르쳐 주고 난 뒤에, 그 채점방법에 따라 높은 성취동기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이야기를 개인이 지어냈다고 해서, 과연 동기가 육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품는 것은 정범모의 교육 개념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것을 의문으로 보기보다는, 정범모의 교육 개념에 대한 특징을 올바르게 파악했다고 보아야 하며 단지 정범모의 교육 개념이 가지고 있지 못한 양상을 제시한 것이라고 봐야한다.
다시 말해 필자는 저자와 같이 정범모의 교육 개념이 교육의 유일한 양상으로 여기지 않으며, 공학적 개념에 나타난 문제의식을 인정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교육에 대한 ‘인간행동의 계획적 변화’라는 정의에 나타난 문제의식 이외에, 다른 문제의식들도 가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의문을 가진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앞서 제시한 문제의식에 입각하여 공학적 개념과는 다른 교육의 양상이 있음을 제시하였다.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인간행동의 계획적 변화를 ‘교육’으로 부르는 것은 오히려 교육의 개념을 불분명하게 만드는 것이며, 계획적인 상황이 아닌 경우에도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본 글은 이홍우 교수의 교육의 개념 중 '2장 공학적 개념' 읽고 작성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