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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듬 Jul 24. 2018

조바심을 견디는 연습

교실 속 이야기

종례를 하러 교실로 걸어가는 도중에 나와 반대 방향으로, 교실에서 교무실을 향해 오는 반장이나 부반장을 보면 흠칫 긴장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 반 반장과 부반장은 반 안에서 일어났던 특별한 일들을 들려주는 메신저이기 때문이다. 내가 교실을 보지 못하는 때에 일어나는 특별한 일 말이다. 예컨대 공을 가지고 놀다 친구의 안면을 강타한다거나, 누군가 수업 시간에 신나게 끼를 발산하다 선생님께 호되게 혼났다거나, 그게 아니라면 다툼이 있었거나.


종례를 하러 가는 길. 저멀리 걸어오는 이는 부반장으로 확인되었다. 나는 흠칫, 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무슨 일 있었구나!"

딩동댕! 오늘의 사건은 다툼.


"선생님. 마지막 교시에 수업하실 선생님 들어오시기 직전까지 ㄷ과 ㅁ이 심하게 말다툼을 했어요. 처음엔 욕만 좀 하더니 나중에는 패드립도 심했구요."

"서로 때리거나 하지는 않았어?"

"네."


이미 점심 시간에 한 차례 사건이 있었던 오늘. 교실에서 ㄷ이 공으로 선풍기 뚜껑을 날려먹는 바람에 종례 때 잔소리 폭탄을 던지려 벼르고 있던 참인데, 또 ㄷ이야?아휴.


내가 두 학생의 다툼 소식으로 인해 심기가 불편해졌다는 것을 모든 이가 알게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태연하게 종례를 했다. 공놀이는 밖에서 하자는 잔소리좀 했다.


"ㄷ, ㅁ 쌤 좀 만나고 가자."


척하면 척이지. ㄷ과 ㅁ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뀐다. 대놓고 표현은 못하지만 슬쩍 입술을 내미는 아이들. 신발을 갈아 신는 손놀림이 퉁명스럽다.


선생님. 제가 ㅁ이 안 앉아 있길래, ㅁ 의자 뒤로 지나가려고 의자를 앞으로 밀었는데, 옆에 서 있던 ㅁ이 화를 냈어요. 그래서 싸우다 보니 욕하고... 


선생님. 제가 자리에 앉으려고 의자를 뺐는데, ㄷ이 바로 의자를 앞으로 다시 넣는 거예요. 그래서 열받아서 욕했어요. 패드립은 제가 먼저 했어요.


사건을 정리했다.
"서로의 입장에서는 시비를 거는 것처럼 느꼈을지 몰라도 양쪽 이야기를 들어 보니 다 이해가 간다. 너희도 그렇지? ㄷ은 지나갈 때 "잠깐만." 한 마디만이리도 했다면 좋았을 거고, ㅁ은 ㄷ이 왜 의자를 앞으로 밀었을까 잠시 기다렸다면 싸울 일도 없었겠지."

"그래서 어떡할래?"


아까 목청 높여 싸우고도 분이 안 풀렸는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서로에게 사과할 것에 대해서만 말해 볼래?"


욕한 거요.

패드립한 거요.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그런데요. 전 사과하기 싫어요! 얘랑 친해지기도 싫구요. 잘 지내고 싶지도 않고, 그냥 모르는 사람처럼 살고 싶어요. 저랑 ㅈ이 놀 때, 쟤가 맨날 끼리끼리 논다고 비웃었단 말이예요!


오늘의 사건이 점점 수렁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단편적으로, 일시적으로 드러난 갈등을 중재하던 중에 지난 사건이 들먹여지기 시작하면 장기전으로 가게 마련이었다. 묵은 감정을 해소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했다. 이대로 두면 둘의 사이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내 마음 속에서는 '어 판결을 내려서 둘을 화해시켜 버리고 싶다'는 유혹이 강하게 휘몰아쳐 왔다. 서로에게 상처 입은 마음을 당장 치유할 도리가 없고, 진정한 치유와 화해에 이르기까지는 노력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드니, 오늘 건만 얼렁뚱땅 정리하는 게 쉬운 방법이었다. 교사가 적당히 화해 무드를 조성하면 아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악수 정도는 할테고, 그럼 오늘의 사태는 마무리가 되는 것이었다. 더 쉬운 방법도 있었다. 두 아이의 잘못만 캐내어 교사가 호되게 야단을 치고 돌려 보내는 것. 야단 맞은 아이들은 더이상 교사에게 푸념하지 않게 되니 얼마나 편한가?
하지만 이런 유혹들 앞에 무릎 꿇지 않도록 나의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조바심을 버려야 했다.


잠시, 아주 잠시 숨을 고르고 목소리를 낮췄다.


"ㄷ이 예전부터 서운한 게 있었구나. 그래, 쌤은 너희더러 당장 서로를 용서하라고도 할 수 없고, 서운했던 일을 다 잊고 친하게 지내라고 할 수도 없어. 하지만 우리가 한 반에서 지내는 한 부딪칠 수밖에 없으니 조금만 더 생각을 해 보는 게 어떨까 싶어. 서로 기분이 많이 상했을테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각자 오늘이나 예전에 서로에게 잘못한 부분이 없는지 잘 돌아보고 와. 쌤이 내일 각자 부를게.
덧붙이자면 세상에는 나와 잘 맞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어. 하지만 모두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 잘 생각해보기를 바라."


자신들의 갈등 상황을 당장 해결해 주지 않고 유보한 담임에 대한 미적지근한 아이들의 반응. 이 과제를 미해결 상태로 내일의 과제로 미뤄야 한다는 부담감. 나는 잠시 눈을 감고 모른 척해야 했다.


기다리는 연습. 조바심을 견디는 연습. 쉽지만 폭력적인 해결 방법에 넘어가지 않는 연습. 내가 교단에서 항상, 부단히도 노력해야 하는 것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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