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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듬 Sep 01. 2019

진로전담교사, 고민 시작

출발

중학교에서 담임교사로 지낸 지 9년. 국어 수업을 해 온 지도 9년. 어느 정도 학교 일들이 파악되고, 손에 잡히기도 할 즈음인 것 같다.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하고, 동료 교사들과 업무를 나눠하는 것도 적당히 익숙해질 쯤이 되니 함께 찾아온 그것. 매너리즘 Mannerism 또는 탈진 증후군 Burnout syndrome.


올해는 힘든 일도 많지 않다. 수업은 내 재량껏,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계획하고 진행하고, 수업을 함께 하는 학생들은 내가 의도하는 대로 합을 잘 맞춰주고, 포기하는 이 하나 없이 내게 상상 이상의 결과물을 안겨준다. 업무도 많이 힘들지 않고, 담임반 친구들은 항상 밝고 긍정적이라 내게도 웃음을 전파한다. 선생님들과의 관계도 좋고 학부모님들도 담임인 나를 믿어주시니 걱정도 없다.


하지만 교단에서 몇 년을 지내면서 누적된 피로와 감정들 때문인지 별일이 없는 요즘도 거의 매일 같이 '어떻게 하면 좋을까'가 머릿속을 맴도는 채로 지내 했다. 휴직을 할까, 대학원 공부를 해 볼까, 그럼 파견을 준비해 볼까, 방통대를 다녀볼까, 아예 다른 분야의 새 인생을 계획해볼까 온갖 생각이 왔다갔다.


그러던 중 진로전담교사 전환 공문이 도착했다. 

당연히 내겐 관련 없는 공문이겠거니 싶어 그냥 휙 넘기려다 멈칫, 마우스 움직임을 멈췄다.


5년이라니. 자격 조건에 해당하잖아?

비록 우대 조건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지원은 가능했다.


<자격 조건>
* 도내 공립 중등 교과교사로서 실경력 5년 이상의 1급 정교사
* 전과 후 10년 이상 근무가 가능한 자
* 우대 조건: 대학원 진로진학상담교사 자격 취득자에 한해 취득 총점의 5% 가산점 부여
                   (선발 후 부전공 자격연수 없이 전과 발령함)


자격 조건을 확인한 나는 동료 선생님들 몰래 공문을 출력했다. 내가 이 문서를 유심히 보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다른 이들의 말과 생각이 내게 날아들 것이 싫었다.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상태이니 더더욱.

남몰래 틈틈이 문서를 확인하며 가능성을 점쳐 보고, 이 자리가 나에게 맞는 자리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솔직히 당장 새로운 전환기가 필요함을 느끼던 내게는 진로진학상담교사 자리가 내 적성에 맞을지를 고민하는 것보다는, 가능성이 있는가를 점쳐 보는 데 온 힘을 다하게 었다.


먼저 5년 치 공문함을 뒤졌다. 각 연도의 자격 조건과 선발 인원과 선발 과정이 궁금했다.

올해는 5년 이상의 교육경력, 1급 정교사로 전과 이후 10년 이상 재직 가능한 자.
지난해는 7년 이상의 교육경력, 1급 정교사
지지난해는 10년 이상의 교육경력, 1급 정교사


가만 보니 해가 지날수록, 과목 전환 앞놓인 벽이 하나씩 하나씩 허물어져 온 모양새였다. 몇 년간 진로진학상담교사로서 필요한 입시 지도 경력 ―3학년 부장 및 담임을 요구하던 교육청이 최근에 이 항목을 없애버리기까지 했음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자격 조건을 완화해 온 것은 더 넓은 연령층, 더 다양한 재원을 진로전담교사로 끌어들여보겠다는 심산이 아닌가 하는 결론에 다다랐다. 


선발하는 인원도 올해 갑작스레 늘어난 것이었다.

재작년과 작년에는 7명 정도를 뽑았는데 올해는 22명.

세 배나 많은 인원이 선발된다니! 선발 인원도 내게는 플러스 요인으로 느껴졌다.


의아했던 건 선발 방법이었다.

선발을 오로지 서류만으로 하겠다는데 도통 변별력이 있는 것인지 아리송했다. 

정량평가(50점)
1. 지난 5년간의 부장 또는 담임 경력
2. 지난 5년간의 직무 연수 이수 실적
    (15시간 이상, 7월 31일 기준)
정성평가(50점)
- 진로 교육 실적 및 계획서 (5-6매, 최대 6매)


보통의 교사들은 특정 업무(학교폭력이나 교시 등 과중한 업무)를 맡지 않는 한 부장이 아닌 이상 담임을 맡게 되고, 1년에 60시간 이상의 직무 연수를 듣는다. 그러니 정량평가에서는 대부분의 교사들 모두 감점 요소가 없는 셈인 듯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정량평가에서 변별이 생기지 않으니 내게는 정성평가가 문제인 셈이었다. 나는 진로 담당 교사가 아니었으니 특별한 실적은 있을 리 만무하고, 진로 담당 교사가 아니니 진로 교육 계획을 잘 세울 리가 만무하고...


문득 우대 조건이 궁금해졌다. 진로전담 부전공을 한 사람들에게는 가산점을 주고 부전공 없이 발령을 낸다던데. 그렇담 진로진학상담을 부전공한 교사들이 현직에 있다는 말이 아닌가 싶어 자료를 검색해 보았다.

2017년부터 교육부의 지정을 받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진로진학상담 부전공을 개설하였고, 현직 교사들이 부전공을 이수하면 진로전담교사 자격증을 받게 된다는 내용의 기사를 여러 개 찾았다. 2017년에 시작된 제도이니 2019년인 지금쯤이면 전공 과정을 끝낸 교사들의 수가 꽤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를 읽으면서 금세 주눅이 들었다. 서류를 열심히 써서 내봤자 들러리만 서고 끝날 것 같은 느낌? 결과가 훤해 보이는 듯한데 의미가 없을지라도 노력을 해볼 것인가, 그냥 먼저 접어버릴까 몇 주동안 계속 고민만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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