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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필적 글쓰기 Jul 02. 2016

서프러제트(Suffragete, 2015)

낯설지 않은 그녀들의 서러움 



 여성 참정권 얘기를 다룬다. 알 만한 사람은 안다. 시민혁명과 여성이 참정권을 얻게 된 시기 사이의 공백은 상당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때까지 여성의 정치 활동은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여성이 투표권을 얻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영화는 막판 크레딧에 여성 참정권이 보장된 국가들을 열거하며 이 영화가 여성 참정권에 관한 영화임을 분명히 한다. 크레딧 말미에 '사우디아라비아'란 이름이 등장할 때 나도 모르게 울컥함이 몰려온다.


 영화는 차별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란 생각에 영국은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는 일을 망설인다. 남성 주체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흘러나온다. "여성은 보다 감정적이기에 정치 활동에 적합하지 않다." 모드 와츠(캐리 멀리건)를 대면한 경찰은 말한다. "비정상적인 정신 문제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으나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여성은 비정상적인 존재이기에 정치 활동에서 배제되는 거다. 그 당시 남성 기득권들이 보기에 여성에게 어떤 정치적 권리도 보장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정상적이다.



 흥미로운 건 영화가 '권리 없는 여성'의 암울한 현실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영화는 멀리 가지 않는다. 카메라는 '가정'을 비춘다. 영화는 모드 와츠의 가정 생활을 보여주면서 그 당시 여성이 권리의 영역에서 얼마나 소외받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모드 와츠는 여성 투표권 운동을 벌이다가 경찰에 체포된다. 남편 소니(벤 위쇼)에게 구박을 받고 집밖으로 쫓겨난다. 소니는 조지와의 만남을 금하며 말한다. "아이에 대한 모든 권리는 남편인 나에게 있다. 그게 법이다." 그 당시 법은 자식에 대한 권리를 동등하게 부여하지 않는다. 법에 따르면 '여성'은 권리를 향유하는 주체가 아니다. 조지가 사랑스럽게 말하는 '엄마'란 말엔, 소니가 애절하게 조지를 바라보는 시선엔 아무런 법적 효력도 담겨 있지 않다.


 소니는 기어코 일방적으로 조지를 입양시킨다. 조지의 생일을 축하해 주러 온 모드 와츠는 뜻밖에 날벼락을 맞는다. 소니와 조지는 말끔하게 옷을 차려 입고 있다. 생소한 얼굴의 부모들이 조지를 데려가고자 기다리는 중이다. 소니는 말한다. "어쩔 수 없다." "이게 최선이다." 그 행동엔 아무런 법적인 하자가 없다. 모드 와츠는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다. 무력한 모드 와츠의 모습을 보면 여성의 권리가 남성에 비해 얼마나 열악한지 알 수 있다. 아무런 권리를 쥐지 못한 여성의 서러움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 장면 직후 모드 와츠는 투철한 펭크허스트(메릴 스트립)의 지지자가 되는데, 그건 그녀가 자식에 대한 권리를 통해 여성의 권리 문제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정치'의 범위가 투표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영화는 암시한다. 넓게 보면 일상 자체가 하나의 정치 공간이다. 자녀에 대한 권리 문제는 남녀 간 정치 문제이기도 하다. 모드 와츠가 '행동'함으로써 얻으려는 참정권은 일상의 모든 걸 대상으로 포섭한다. '그녀'들이 기존의 법을 부수고서 새롭게 제정하려는 법은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남녀의 권리를 동등하게 기록한 법이다. 영화는 '참정권'을 소재로 삼으나 이 '참정권'의 개념은 통념을 비껴간다. '정치'의 범위는 훨씬 넓다. 막판 크레딧이 올라갈 때 우리가 깨닫는 건 '그녀'들의 투쟁이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모드 와츠는 조지를 잃었다. 그러면서도 아무런 말을 못했다. 그녀는 정치적 벙어리였으니까. '법'은 그녀의 목소리를 실체로서 인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조지를 붙잡고서 눈물을 흘린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내겐 그 무력감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와닿았다. 지금도 숱한 영역에서 여성은 여성이란 이유로 '권리' 배제를 강요당한다. '아내'로 살아가는 게 당연하다는 식의 조롱을 받는다. 단순히 수십 년 전의 과거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현대를 정조준한 영화다. 모드 와츠가 느끼는 '서러움'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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