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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 숲해설가 황승현 Dec 15. 2024

어느해 한여름 전원주택 잔디깍기

추억의 '시골에서 온 종달새 편지' / 아버님을 추모하며

episode


더위가 계속되어 가물지만 잔디를 깍을 때가 되어

이른 저녁을 먹고 아버님과 정원 잔디를 깍습니다


올해는 가물어 예년에 비해 잔디를 자주 깍지 않았다고

가무니까 잔디가 더디 자란 것이지요

깍은 곳과 안 깍은 곳이 차이가 나고


왼쪽 복숭아 나무 건너편 맷돌 호박에 물 주시는 어머니

커다란 맷돌 호박이 두개 누렇게 잘 익어갑니다


이곳까지가 제가 깍은 것

힘 덜어 주신다고 아버님께서 잔디깍으시는 동안

깍은 잔디를 갈퀴로 긁어 모으지요

왼쪽 갈퀴 아래는 예초기 연료인 휘발유




전원주택 푸르른 잔디

보기도 좋고 밟기는 좋지만

정원에 잔디를 관리하는 것

생각만큼 쉬운 것이 아니지요.


매일매일 잡풀 뽑아 주고

가물면 물도 주어야 하고

길게 자랐다 싶으면 잔디를 깍아 주어야 합니다.

말이야 세음절지만

더운날 이 일들을 하려면 고역아닌 고역이지요.


오늘 작업하는 잔디깍는 구형 예초기

묵직하여 소음과 진동이 만만치 않아

한참을 작업하다 보면 허리와 어깨, 목이 아파오며 땀은 비오듯 하고

양팔은 천근 무게와 진동으로 고통이 찾오는데

더운 날 잔디 깍는 그 힘든 것을 제가 해냅니다.


예초기 작업중 제일 어려운 것은 경사지 잔디를 깍는 것이지요.

경사면에 예초기를 메고 두다리로 안정적으로 위치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고

예초기 작동기를 짧게 잡아당겨서 그 간격을 유지하며

경사면을 따라 작업을 해야 하니 이중으로 힘이 듭니다.


어제는 윗마당 오늘 아침은 아랫마당

아침 6시 이슬이 가득한 정원

예초기 소리에 놀란 '방아깨비'




못미덥게 지켜보시던 아버님 예초기 시범을 보이십니다

20여년 된 예초기 몸과 기계가 한몸인 듯 가히 예술의 경지



자~ 이제 본격적으로 잔디를 깍습니다.

더위가 무서워 이슬도 마르기 전인 이른 아침에 일을 시작하는데

그 소리에 놀란 메뚜기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야단이지요.

날벼락이라면 날벼락

그래도 제일 큰 일 난 녀석들은 개미들

잔디밭 땅속에 얼마나 커다란 개미집을 지었는지 수백마리의 개미들의 경황없는 움직임으로 짐작이 됩니다.


잠시

메뚜기와 개미 입장에서 예리한 예초기가 다가오는 소리와 진동을 생각해 보네요.

거대한 인간이 커다란 밀집 모자를 쓰고 탱크같은 등산화로 잔디를 밟으며 다가오는데

등에 짊어진 물체에서 연기가 나며 거대한 소리가 나고

곤충들을 보호하고 기대어 사는 잔디를 여지없이 잘라 날려보내는

무지막지한 기다란 줄이 '윙윙'거리며 돌아가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죽는가 싶어 그래도 열심이 날아서 달아나고 뛰어서 달아나고 '걸음아 나 살려라' 기어가고


그날 오후 아랫마당 옆, 마을 이장 감자밭

감자 시세가 맞지 않아 캐지 안고 갈아 엎어

그 밭에서 주워온 감자를 갈아서 감자전을 해주셨습니다

부추, 아삭이 고추를 넣어서


"어디는 먹을 것이 지천이고,

어디는 굶어 죽어가는 세상이니,

이런 요지경이 있느냐?"는 어머니...



한편

귀한 화초나 어린 나무가 있으면 예초기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다.

저 앞의 어린 소나무도 '얼음'하고 긴장하고 있군요.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가련한 신세로 달아나는 곤충들이 부러운데

날카로운 날이 내게 닫지않기를 빌 뿐


그렇게

이른 아침부터 3시간여 작업하고 마무리했는데

많은 생명들 주검으로 이르게 하고 놀라게 했겠다 싶습니다.


삶이 다 그렇겠지요.

나 편하고 나 행복할 때

누군가는 희생하고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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