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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총총 May 30. 2019

싱가폴에서 뉴욕까지 - 컨설팅 라이프

한번이 어렵지 두번은 안 어려워

터널을 나와 빛을 보고 나면 어둠의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지만 그 터널을 지나고 있을 때에는 과연 출구가 있는 것인지 의심을 하게 된다. 파리에서의 구직을 끝내고 싱가폴 회사에서 오퍼를 받았을 때 온 세상이 환해진 것 같았다. 다시 회사원이 된다는 건 하루에도 몇 번씩 업 앤 다운이 있는 애증의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이지만 나는 드디어 터널에서 탈출했다. 끝이 없을 것 같았던 거절감을 뚫고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었던 그 순간들을 견뎌낸 보람이 있었다.


처음 며칠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싱가폴로 떠나는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이 모든 게 사실이 맞는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만나본 적도 없고 인터뷰도 전화로만 했고 만약에 내일 첫 출근을 했는데 나 같은 사람 모른다고 하면 어떡하지?  


그리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벌여놓고 실패할까 봐 시작하기도 전에 두려워지기도 했다. 컨설팅회사에서는 보통 컨설팅회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사람들과 인더스트리에서 커리어를 시작해서 컨설팅으로 이직을 한 사람들로 나뉜다. 나는 후자이기도 하고 한국에서 일했던 첫 번째 회사에서 워낙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일을 했던 터라 두 번째 직장에서의 새 출발이 처음엔 걱정이 많이 되었다. 내가 여기저기 용감하게 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워낙 새가슴인 사람이라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걱정 투성이었다.


2013년 9월 드디어 싱가폴에서 컨설턴트로 막상 첫 시작을 하니 초반의 걱정과 의심이 무색하게 나는 금세 업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고 죽으란 법은 없으니까.


컨설팅 회사에서는 프로젝트 베이스로 업무를 하기 때문에 어떤 프로젝트는 좋은 팀과 클라이언트, 재미있는 서브젝트를 만나 즐겁게 일을 하기도 하지만 똑같은 이유로 함께 일하기 힘든 팀원이나 매니저, 어려운 클라이언트와 재미가 없는 서브젝트에 당첨(?)될 때도 있다. 이제는 요령이 생겨서 일 잘한다고 소문난 직원들은 미리 공을 들여놓거나 침을 발라놓기도 하지만 그때는 경험이 부족하기도 했고 주니어 포지션이라 그럴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 날은 2014년 상반기를 하얗게 불태운 악마의 프로젝트를 끝내고 지친 심신을 달래러 한국에 1주일 다녀온 후 복귀한 첫날이었다.


그 싱가폴 컨설팅 회사의 다른 팀에 있었던 팀원에게 문자가 왔다.  


우리 10시에 10층에서 만날까요?


지나고 보니 뉴욕으로 이동할 때까지 일련의 일들은 모두 저 한마디로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그때에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지만.


난 속으로 '이렇게 일찍 커피 한잔을 하자고?'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봤더니 내가 없는 사에 리소싱에 문제가 있었던 그 다른 팀에서 우리 팀에게 리소스를 요청했고, 내가 없는 사이에 i was borrowed/adopted! 컨설팅에서는 종종 일어나는 일인데, resource availability에 따라서 다른 팀 사람들과 종종 프로젝트를 같이 하게 된다. 그 팀원이 3주 동안 길게 휴가를 가야 하는 일이 생겨서 어찌하다 보니 우연히 내가 그분을 커버하게 된 것.  


처음 인수인계를 받으려고 만났는데 하는 말이

You are going to be doing PMO for an AML project.


이게 무슨 외계어야.

저 문장에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terminology가 하나도 없어서 난 이미 망했음을 직감했다. 나는 AML이 뭔지 PMO가 뭔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지만 이미 빌려진 상태였고 벤치에 있느니 charge나 하자 싶어 그렇게 우연히 그 프로젝트에 들어가게 되었다.


Long story short,  3주만 커버해주기로 했던 프로젝트에서 나는 10개월이나 일을 해버리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그 function도 그 field도 너무나도 생소하고 낯설었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2-3개월이 지난 후엔 남들이 보기에도 내 생각에도 그 일을 꽤나 잘하게 되었다. 그게 사실 뉴욕오피스에서 시작한 글로벌 프로젝트였고, 싱가폴이 APAC  오피스였는데 홍콩에 있는 클라이언트가 컴플레인을 강하게 하는 바람에 뉴욕오피스 사람들이 싱가폴로 출장을 자주 오게 되었고, 뉴욕 리소스들과 일을 가까이하다 보니 그들과 친구가 되었고, 그중 나랑 가깝게 지내던 매니저가 뉴욕으로 옮길 생각이 없는지를 물어보면서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났다.  



사실 까다로운 클라이언트를 만나면 더 심해지지만 프로젝트에 따라서 관련 경력의 여부가 중요한 프로젝트들이 있는데, 이 프로젝트는 리소스가 너무 급하다 보니 관련 경력이 거의 없는 나를 쓰게 된 것이긴 한데, 보통의 프로세스를 따랐다면 그 프로젝트에 들어가기 사실 굉장히 어려웠을 것이다. 이렇게 조미료처럼 모든 일에는 운(이라고 쓰고 그분의 계획이라 읽는다)도 따르게 되는 것 같다.  


뉴욕으로 옮기기로 결정하고서도 여전히 4번의 인터뷰와 비자 프로세스를 거쳐야 했고 2015년 6월, 나는 드디어 뉴욕으로 왔다. 


싱가폴에서 그 프로젝트에 들어간 것도, 3주가 10개월이 된 것도, 그 모든 사람들을 만난 것도 우연 같은 필연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지금 하찮아 보이는 일이 결코 하찮지 않을 수도 있고, 그래서 나에게 주어지는 어떤 일도 가벼이 여기고 대충 할 수가 없어진다.

오늘의 작은 일이 내일 얼마나 큰 일과 인연으로 이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그 작은 일들이, 작은 실패와 성공들이 쌓이고 쌓여 인생이 되어 간다.


Photo credit: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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