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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총총 Sep 14. 2018

그를 만난건 운명?

12년 전, 2006년의 겨울은 특히나 더 춥게 느껴졌는데 그건 아마 이력서를 수백장 돌려도 서류통과도 하지 못하는 내 구직상황 때문이었겠지.  빠른생일로 남들보다 1년 일찍 학교에 들어와 1년 휴학을 했으니 그다지 느린것도 아니고, 요즘엔 내가 학생일때보다 평균 휴학기간이 긴 편이니 한국나이 스물셋이 늦은 나이도 아닌데 그땐 마음이 그렇게 조급했었다.  


겨우 얻은 몇 안되는 면접기회도 좋은 소식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지금이야 내가 뭘 원하는지 롱텀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을 많이도 하지만 그때 그런 생각따위는 사치였고 오퍼를 여러군데서 받는건 바라지도 않았으며 그저 한군데, 딱 한군데 취직이 되어 따박따박 월급이나 받았으면 좋겠다 희망하던 때였다. 


아마 2006년 12월 말이었을까, 취업스터디를 통해 알게된 지인을 통해 보험회사의 언더라이팅이라는 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콧대높은 국내 대기업은 날 받아줄리 없으니 영어를 쓸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는 외국계회사를 알아보자 라는 마음을 먹은순간 내 인생의 나비효과가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왕 12월도 거의 다 지나갔는데 2007년 새해가 오면 새마음 새 뜻으로 구직활동에 매진해보자 마음을 먹었었다. 미쳐 쓰다만 이력서가 있는것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어느날 아침, 버스정류장에서 전화 한통을 받았다. 


"xxx씨 되시죠? 여기는 ING 생명 계약심사부 인데요. 혹시 오늘 오후에 면접 보러 오실 수 있나요? 그리고 영어 면접을 봐야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전화를 하셨던 분은 아직도 종종 연락하며 가까이 지내는, 지금은 홍콩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계시는 선배님 A.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러 갔더니 어떤 잘생긴 인도 남자와 사람좋게 생긴 중년의 남자분이 면접관으로 들어왔다. 싱글싱글 웃으며 들어오던 그 인도 남자는 Management trainee program중에 한국으로 부임해 온 젊은 남자였다. 인도사람이 면접관이라니! 


당연히 한국말을 못하기 때문에 면접은 영어일 수 밖에 없었고 나는 긴장되는 마음에 버벅거렸지만 진심을 다 했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게 없었으니까.  


이 업무가 어떤 일인것 같냐고 물어보길래 열심히 설명을 했는데 "아 아니, 사실 그건 우리 옆부서 일인데...하하하" 이러길래 아 망했구나 했으나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로는 그 인도인 부장님 비벡이 나를 너무 맘에 들어해서 면접 후에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시작도 하기 전에 "걔가 도대체 어떤 애길래"라며 미운털이 박혔었다. 


당시 ING생명에는 각 지역의 우수인재(?)를 선발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본사로 3주정도 트레이닝을 보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전세계에서 200명이었나, 그리고 한국에선 3명이었다. 

비벡 부장님의 강력한 추천으로 나는 그 3명 중 한명이 되었고, 그렇게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3주나 되는 시간 동안 가깝게 지내본건 난생 처음이었다. 그때만해도 한국에서만 자라고 교육을 받은 나는 질문을 하거나 그룹토론에 거리낌없이 참여하는것에 좌불안석했으나 글로벌한 환경에서 색다른 경험을 한다는건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때 아마 처음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꿈꾸지도 못했던 해외에서의 생활, 유학, 그런거 나도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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