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HLEE Prosthodontist Oct 04. 2021

04. 내가 산다면 얼마나 더 산다고

어느 치과의사의 틀니 이야기 4 

04. 내가 산다면 얼마나 더 산다고



진료실에서 틀니를 만들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내가 산다면 얼마나 더 산다고..."입니다.


뒤에 이어지는 말은 다르거나 끝을 흐리는 경우가 많으시지만 열에 아홉 분은 저런 말씀을 틀니를 만들고 조정하는 과정 중에 꼭 한 번씩은 하시곤 합니다.


그중에서도 틀니를 만들기 시작한 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힘들다고 느끼시면 으레 환자분들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저 말씀은 괜찮다는 의미가 아니고 덜 힘들게 빨리 만들어 달라는 의미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서 빨리 틀니를 만들어달라는 환자분들의 채근이며 잘 만들라는 당부임을 매번 느낍니다. 그럼에도 저런 무거운 얘기를 들으면 틀니를 만들고도 아프다는 이야기 때와 마찬가지로 송구스럽습니다.


저 표현은 실은 틀니를 만들고 적응하는 과정 어느 때에서도 유용하게 사용하시는 말씀입니다. 틀니를 만드는 데 오래 걸리 때에도, 틀니를 만들고 아플 때에도, 틀니의 적응이 힘들 때에도, 치과까지 정기 검진을 오는 길이 힘들 때에도 저에게 건네시는 말씀입니다.


참 많이 들어온 말이지만 무뎌지지 않는 말들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틀니를 만들 때 저 이야기를 안 듣는 것을 잘 상상하기도 힘듭니다. 경험이 많은 치과의사들조차도 어렵게 이 얘기를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저도 앞으로도 계속 무뎌지지 않을 것 같긴 합니다.






저 말을 들으면 저로서는 난감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저 말에 대한 여러 가지 반응을 고민도 해보고 교수님들께서 반응하시는 모습들도 보았는데 치과의사로서 각각의 성향도 다르기에 늘 고민이 되는 부분입니다.


여러 가지 상황에서 범용적으로 사용하시는 말씀이지만 듣는 입장에서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이유는 환자분들의 연령대 때문입니다. 실제 틀니를 만드는 진료의 과정 중에도 다른 질환이 악화되는 경우들이 있어서 건네시는 "내가 산다면 얼마나 더 살겠어?"라는 말씀이 무겁습니다.


실제로 대학병원 및 병, 의원에서 틀니를 만드시고 혹은 정기 점검 중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담당 치과의사분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묻어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진료실에서 사연 하나씩 만들어 가며 친근해진 환자분의 안타까운 소식은 그 깊어진 기억만큼 안타까움으로 다가옵니다.


저는 수련을 마치고 진료하는 병원을 옮기게 되어 아직은 그러한 경험을 하지는 못하였고 옆에서 어시스트 등으로 간접적으로만 경험을 했을 뿐이긴 합니다.


저 이야기를 듣게 되면 저로서는 좀 더 빨리 틀니를 완성하고 적응하도록 도와드려야겠다고 초조해지지만 동시에 이를 앞당길 뾰족한 수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배운 내용을 더 엄격하게 적용하고 좀 더 정확하게 진료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물론 저 얘기가 없다고 하여 대충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산다면 얼마나 산다고..."라는 말씀은 분명히 부담스러운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좀 더 어르신들의 삶에 대한 태도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남은 날이 더 많은 경우에는 미래에 더 나은 상황을 계획하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남은 날이 불확실하고 많지 않으리라 생각이 된다면 저 또한 현재의 불편함을 줄이는 방향에 좀 더 초점을 맞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래를 위해 인내하거나 투자하는 것에 대해 큰 흥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틀니를 만들고 적응하는 과정은 미래를 위해 인내하거나 투자하는 것에 좀 더 가까운 치료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빨리 틀니를 완성하고 싶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힘들게 오라는 날들을 다 어찌어찌 와서 틀니를 만들었는데 너무 불편하여도 속상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눈앞에 있는 저희에게 역정을 내시기도 속상함을 표시하시는 거라 이해하려 합니다.


틀니를 만든다는 것이 환자분의 후반부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치료입니다. 하지만 환자분의 상황과 달리 진료를 수행하는 저는 아직 미래를 계획하고 남은 날들이 많다고 여기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습니다. 이런 차이 때문에 환자분들의 상황에 대한 충분한 배려 없이 말을 하는 경우들도 있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늘 긴장하고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진료의 경험이 쌓여갈수록 머리로 이해하려는 노력도 같이 비례하여 커집니다.


정말 속상하고 무거운 이야기이지만 이해의 출발이 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틀니를 만들게 되면 거의 대부분의 환자분들께 듣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하는 모든 분들이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건강하게 음식을 드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감사합니다


DHLEE.Prosthodontist 드림



매거진의 이전글 03. 틀니는 아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