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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이 Apr 30. 2024

머리 하는 날

어떻게 해 드릴까요?

머리를 하러 갔다. 아파트 근처 상가 건물에 위치한 작은 가게이다. 화려하게 화장하고 향수 뿌린 디자이너 선생님이 없는게 장점이라면 장점인? 작은 미용실이다. 한달만에 머리가 제법 자랐다. 잘 관리하는 스타일리시한 사람 축에 못 끼는 나로서는 머리 한지 3주가 넘어가면 옆통수로 무자비하게 삐져나오는 머리카락 때문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더 젊었을 때는 다운펌도 하고 아침에 드라이기로 수석 디자이너 샘에게 직강으로 전수받은 스킬을 시전하며 뜨거운 김으로 눌러말리고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한 하드한 제품을 바르는 등 각고의 노력을 했었는데, 요즘에는 누가 날 자세히 보겠냐 싶어 전혀 긴장감이 없는 평범한 상구머리를 수건으로 벅벅 말리곤 한다.


남자는 머리빨이라는 것을 고증하는 다양한 이미지(속칭 짤)가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훈훈한 연예인들의 머리를 해병대 돌격 직각머리로 간단히 수정 했을 때 느껴지는 불쾌한 골짜기...이런 것 때문에 흔히 말하는 연예인도 이렇게 관리를 하는데 한 마리의 오징어가 긴장의 끈을 놓고 사는 것이 맞냐? 라는 이야기도 커뮤니티에서 한참 단골 소재가 되기도 했었다.


보통 머리를 하게 되면, 특히 단골이 아닌 곳에 가게 되면(또는 스케줄이 맞지 않아 다른 디자이너 선생님이 시술을 하게 되면), 같은 방향으로 거울을 보며 마주한 손님과 디자이너 사이 미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어떻게 해 드릴까요?, 찾으시는 스타일이 있으실까요?"


이 때 어디서 캡처한 사진을 들이민다던지, 특정 드라마, 영화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을 외치면 선생님의 고민은 깊어져 간다. 

그냥 기장만 쳐주세요. 여기서 마지막으로 했는데 한달 되었어요. 정도 팁을 준다던지, 이마가 넓으니 앞머리는 남겨주세요. 등 크리티컬한 고객메시지만 전달하면 나머지는 대부분의 선생님이 손님의 두상을 고려해서 알아서 잘 깔끔하고 딱 맞게 해준다.


손님의 입장에서 (특히 나같이 소심한 아저씨의 경우는 더욱) 이러한 것을 알아서 해주는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 가뜩이나 복잡한 인생에서 선택과목 하나를 지운 느낌이다. 


대학생 일 때, 학교 근처에 유명 프렌차이즈 미용실에서 머리를 했었다. 굉장히 프로패셔널한 외모와 어시스턴트로 보이는 직원들에게 절대적 신망을 받던 그녀(존경인지 똥군기 인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그 때 우연한 기회로 연예인과 함께 나오는 촬영이 있었고, 카메라에 내 얼굴이 나올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는 영상으로 평생 박제되는 '헤어'임을 선생님께 당부드렸고, 나의 이 요청이 선생님의 프로의식을 자극한 결과 '염색+펌+트리트먼트+눈썹 정리' 라는 반나절 동안의 집중 시술을 했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누가보면 연예인 오디션이라도 보러 나가는 듯한 기세였고, 스무살의 나와 수석디자이너 선생님의 젊은 날의 열정은 너무나 순수하고 지나치게 거룩했다.


그 때 그 선생님은 잘 살고 계실까? 


과감하게 바리깡으로 밀어낸 반듯한 옆머리를 보며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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