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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이 Apr 22. 2024

상실된 하루

<재즈의 초상>, 무라카미하루키

그 어떤 인생에도 '상실된 하루'는 존재한다. '이 일을 경계로 내 속에서 무엇인가가 변해 버릴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두 번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하고 마음으로 느끼게 되는 날 말이다.


그날은 오랫동안 거리를 걸어 다녔다. 이 거리에서 저 거리로 한 시작에서 다음 시각으로, 분명히 늘 다니던 길인데도 그 거리는 아주 낯설게 느껴졌다.

어디엔가 들어가 술을 한잔 마셔야겠다고 생각한 건 주위가 완전히 어두워지고 나서였다. 위스키 온 더 록이 마시고 싶었다. 잠시 거리를 걷다 재즈 바 같은 가게를 발견하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카운터가 있고 테이블이 세 개쯤 되는 좁고 기다란 공간의 아담한 가게로 손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재즈가 흐르고 있었다.


카운터의 스톨에 앉아 버번위스키를 더블로 시켰다. 그리고 '내 속에서 무엇인가가 변해 버릴 것이다. 두 번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하는 생각을 했다. 위스키를 목구멍 깊숙이 흘러보내며 그렇게 생각했다.


"듣고 싶은 음악이 있으세요?"


잠시 후 젊은 바텐더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고개를 들고 생각해보았다. 듣고 싶은 음악?그러고 보니 분명히 뭔가가 듣고 싶은 듯한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대체 난 여기서 어떤 음악을 들으면 될 것인가? 나는 망연해졌다. 잠시 생각 하고 나서<'포' 앤 모어> 라고 대답했다. 그 레코드의 새까맣고 음울한 재킷이 맨 처음 - 이렇다 할 뚜렷한 이유도 없이 - 나도 모르게 머리에 떠오른 것이었다.


바텐더는 레코드 선반에서 마일스 데이비스의 그 레코드를 꺼내 플레이어에 얹어주었다. 눈앞에 놓인 술잔과 그 안에 들어 있는 얼음을 바라보면서 <'포' 앤 모어> 의 A면을 들었다. 그건 그야말로 그 순간 내가 원했던 음악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때 들어야 할 음악은 <'포' 앤 모어> 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고.


*'FOUR' & MORE(Columbia CL-2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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