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야옹이 Apr 23. 2024

그림자

옷장 속 가장 어두운 색을 고른다.

무표정한 얼굴로

숨어서, 때로는 완벽히 숨겨진 채로


나는 있다


멈춰 서 있다 사거리 횡단보도 앞

휴대폰을 만지작대며, 만지작대는 척하며 미간을 슬쩍 찌푸렸을 뿐인데

너는 그대로 나를 지나친다

휴대폰을 만지작대며


깜빡이는 신호등

그늘을 펼친 가로수 아래 황급히 들어서면

겹겹의 잎으로 싸인 길을 뜻 없이 걷다 보면

또한 뜻 없는 저녁은 오고


무시로 두리번 거리다.

무엇을 찾듯이 어떤 우연을 바라듯이


불분명한, 나조차 나를 알 수 없는 

사람이란 으레 그런 것일까


때가 되면 출근을 하고 구석자리에 얌전히 앉아 

서류철을 매만지면서

어쩌다 가끔은 아니지 이게 아니다 하는 심정이 되어 창 너머 뜨거운 시선을 부려놓기도 하는 것,


그럴 때마다

네게로 곧장 달려갈듯이, 그럴 때마다

더욱 고요히 뭉뚱그려진 채로


나는 있다


이런 나를 뭐라고 부를까 너는









작가의 이전글 나이 먹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