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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화 Nov 05. 2018

그리스 와인을 만나다.

시노마브로의 변주 1. - 로제.

정말 오랜만에 쓰는 와인글인데 나는 그 시작을 그리스 와인으로 정했다.

아마도 한동안은 이곳을 통해서는 익히 알려진 지역의, 잘 아는 품종이 아닌 

다소 낯설고, 이상한(?) 와인들이 소개될 것이다.

왜냐하면......

남들이 다 아는 걸 하는 건 재미가 없으니까.




그리스 와인을 처음 만나게 된 때는 1년 전이다. 

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 그리스 식당에서 그리스 와인 시음회에 참석한 것이 첫 만남이었으니 

나름은 꽤 괜찮은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수입중인 다양한 와인들을 마시는 기회였고, 특히 토착 품종만으로 만든 와인과 

토착 품종을 기본으로 두고 인터네셔널 품종을 블렌딩해 만든 와인을 비교해 보는 것은 굉장히

즐거운 일이었다. 

그때 경험했던 시노마브로(xinomavro). 

시노마브로는 그리스 북부의 아민데온(amyndeon)에서 재배되는 그리스 토착 품종인데 양조 방법에 따라 다양한 모습이 드러나는 아주 매력적인 품종이다.

*네이버 밴드 '광화문 와인'의 맹상호 님의 글을 발췌함*


이 품종의 특징을 단순하게 잡아 얘기하자면 부드러운 과일향이다.

굳이 과일향에 '부드러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과일의 향과 혀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껍질이 제거된  

순수한 과육의 느낌이기 때문인데 뭔가 툭! 튀거나 거슬거리는 느낌이 없다. 

뭉뚱그려서 말하자면 밸런스가 좋다. 

가볍게 마시기 좋은 로제 와인에서든

힘을 좀 더 들인 레드 와인에서든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품종의 특징은 부드럽고 순한 과일향이다. 

그래서 와인은 산미가 낮은 편이 아닌데도 전체적으로 둥글둥글한 느낌이며

음식과의 매칭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과일향이 주 캐릭터인 와인은 시음자들에게 호불호가 없고,

밥상 와인으로 어울릴 음식을 찾는데 까다롭지 않아 좋다.


시노마브로 만나기 1편에서는 가볍게 가보기로 한다. 

시노마브로 로제.

키르-야니 아카키스 로제 2015.

(kir-yianni akakies rose 2015.)



와인의 컬러는(로제 와인치고는) 진한 편이다. 

기특하게도 색이 진한 와인에게 기대하는 깊은 향이 시음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로제 와인을 처음 접하는 와인 애호가들이 느끼는, 

레드 와인에 물 탄 양 이도 저도 아닌 닝닝한 맛으로 인식되는 로제의 불명예가 아카키스 로제에서는 없다. 

로제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첫 경험으로 나는 아카키스 로제를 추천한다. 

일반 로제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풍성한 향과 맛을 경험할 수 있으며,

레드 와인의 탄닌과 화이트 와인에서의 높은 산도가 부담스러운 경우라면 

아카키스 로제는 그것들에 대한 대응으로 아주 훌륭한 선택이라고 본다. 


보통 로제 와인은 마니아를 제외하고는 색이 예쁜 와인으로(비주얼이 훌륭한) 선택되고는 한다.

(맛으로 선택되는 와인은 아니라는 말씀.)

홈파티에서의 보기 좋은 웰컴 와인이라든가, 

세련된 브런치 메뉴에 감성을 더한 사진 한 컷에 소품으로 사용된다든가.

사실 로제 와인의 고유한 기능(?)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와인 애호가는 레드나 화이트 와인에 비해 적은 편인데

그 이유가 아이러니하게도 로제의 특징인 '레드도 화이트도 아닌' 이유이다. 


작년 즈음인가 활동하고 있는 밴드에서 도대체 로제는 무슨 맛으로 마시는 것이냐는 글이 올라왔고,

이에 수많은 댓글이 달리며 로제의 매력을 어필하려는 시도들이 난무했지만 

원글자와 그외의 멤버들에게 가장 많은 호응을 얻는 글은

'로제는 레드도 화이트도 아닌 닝닝한 맛임을 인정하고 접근해야 한다.'는 댓글이었다. 물론 내가 썼다.

어떤 존재든 그것이 갖고 있는 솔직한 민낯을 이해하고 난 후에야 그것을 이해하게 되고, 가치를 알게 된다

아카키스 로제 역시 그렇다. 

일반적인 로제의 특징을 알고 난 후에야 낯선 시노마브로 100%로 만든 로제의 가치가 보인다. 

로제도 낯설고, 시노마브로도 낯선 상황이라면 글쎄 더 힘든 상황이려나?


올 여름부터 집에서 연어를 숙성 시켜 먹고 있다. 

숙성된 연어는 숙성 전 연어보다 식감도 좋고, 연어 특유의 비린내는 사라지고 감칠맛이 증가돼서 

어떻게 먹어도 맛이 있다. 

곤부지메 연어를 처음 먹으면서 생각이 난 와인이 아카키스 로제였다. 

 아카키스 로제 전에는 뉴질랜드 피노누아도 생각을 했으나 풋내나는 어린 붉은 과일과 특유의 산미가 

부드러운 감칠맛을 내는 연어와는 맞지 않을 듯 했고, 

생선에는 화이트 와인이라는 일반적인 공식을 더하기에는 역시나 날카로운 산미가 거슬렸다. 

산미를 가려줄만한 미국 샤도네이라면 어떨까도 했지만 아마도 미국 샤도네이의 풍성한 향이 

정성들여 숙성한 연어를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렸을 것이다. 

이런 고민 후에 선택된 로제라면 독자들도 아카키스 로제의 특징을 짐작하지 않을까?


아카키스 로제는 딸기, 자두, 오렌지, 붉은 사과, 레몬 정도의 과일향이 난다. 

그리고 은은하게 퍼지는 장미향과 기타의 자잘한 꽃향도 난다.

그리고 이러한 과일들을 먹었을 때의 적당한 당도와 산도의 밸런스를 가지고 있다.

향은 달지만 맛에서는 단맛을 찾기 힘들고, 와인의 신선함을 더해줄 정도로 적당한 산미가 있다.

과일의 향은 지속력이 길어 어울리는 음식을 찾아 함께 한다면 음식맛을 즐기는 기쁨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피니쉬가 짧고, 산도가 높은 와인은 함께 한 음식의 잔향과 잔맛을 씻어내주는 역할을 한다.)

숙성 연어가 힘들다면 조개술찜은 어떤가?

살포시 열리는 조갯살에 아카키스 로제의 향이 배어들 것이고 이를 로제 한 잔과 함께 한다면....

당신은 지금 입맛을 다시고 있을 것이 확실하다. 

여기서 잠깐, 꼬막 같은 피조개류와 함께 하면 안 된다. 철분 때문에 과일향이 부딪힐거다.

한 겨울 굴찜 혹은 석화 구이와도 유용하다. 

레몬을 뿌린 생굴회는 샤블리와 함께하고,

김을 올린 커다란 냄비에서 한꺼번에 쪄서 낸 굴찜은 아카키스 로제와 함께 하길 권한다. 

한 가지 식재료를 다르게 즐기는 만큼 다른 와인을 곁들여 줘야 간지라는 게 나지 않겠는가 말이다.


일상에서 와인을 즐기는 방법은 가장 단순하게 즐기는 게 좋다.

와인이 가진 다양한 캐릭터 중 하나에 집중해서 그것의 가치를 돋보일 수 있게 하기. 

아카키스 로제는 향이다. 

그래서 음식은 와인의 향이 극대화 될 수 있는 음식으로 선택하면 안전하다.

조금 더 용기를 내서 각종 허브류와 향신료를 더해서 조리한 흰살 생선과 함께 한다면 

아카키스 로제는 향의 퍼포먼스를 극대화 시킬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의 와인 철학은 가장 단순하고, 일상에서 벗어나지 않게 즐기기. 

시노마브로의 변주1. - 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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