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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우 Aug 22. 2019

곰치국 아니 물곰탕

속초 / 춘선네


어떠한 음식을 먹었을 때, 떠오르는 특정한 순간의 추억이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존재할 것이다. 음식을 업으로 삼고 있고, 그럼과 동시에 음식이 인생에서 결코 작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는 내게 음식과 연동되는 추억의 빈도와 강도는 비교적 일반적이지 않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가장 밀접하고 적나라하게 우리네 삶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라 할 수 있다. 한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아 사바랭’ 은 살아생전 이런 말을 남겼고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당신이 먹은 것이 무엇인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식문화에 대한 다양한 이면을 짧고 굵게 압축시켜주는 명쾌한 문장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럼 이제 나의 어린 시절을 대변할 수 있는 음식들을 나열해보자. 칼칼하게 조려낸 가자미조림, 묵은지와 함께 끓여 낸 도치 찌개, 숯불에 구워 낸 양미리와 도루묵 구이, 신선한 대구로만 끓여낼 수 있는 시원한 지리, 뛰어난 숙취해소 기능을 가득 머금고 있는 국물의 곰치국 혹은 물곰탕. 누가 봐도 나의 어린 시절은 속초, 바로 ‘속초’ 그 자체다.

마지막에 적은 곰치국 혹은 물곰탕. 해가 거듭 바뀌어 27살이 된 지금도 입에 잘 붙지 않는 이 어색한 이름의 음식을 나는 8살 때 처음 맛보았다. 지금도 물곰탕을 판매하는 식당에 가면 심심치 않게 부모의 손에 이끌려 자리를 하고 있는 그 당시 내 또래의 아이들의 한결같은 표정을 만날 수 있다.


맛있었냐고? 아니.


국물 몇 술 겨우 떠먹고 함께 딸려 나온 밑반찬들로 밥 한 공기 힘겹게 비워냈던 그 날의 내 모습을 제법 또렷하게 기억하는데, 식당에 보이는 저 아이들을 볼 때면 그때의 그 기억은 더 선명해지곤 한다.

‘이 음식이 속초에서 엄청 유명한 음식이래’
 

라는 엄마의 절절한 노력이 묻어있던 설득은 초등학교 1학년 짜리 아들의 공감대를 조금도 살 수 없었다. 원해서 온 게 아니었다. 속초도, 이 음식점도.

어쩔 수 없어서, 별 다른 수가 없어서 우리는 여기로 와야만 했다. 그런 내게 그 음식이 맛있게 다가올 리가 없었다. 정말이지, 맛이 없었다.

시간은 흘러 3년이라는 시간의 호주 생활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다시 맛을 본 ‘곰치국’ 은 그때와는 다른 음식이 되어 있었다.


맛있었냐고? 말해 무엇해.


신선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내장과 알이 가득 담겨 있는 국물은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편해지는 느낌을 준다. 한번 맛을 본 사람이라면 오랜 기간 애주가들 사이에서 ‘최고의 해장 메뉴’ 로 뽑혔다는 것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이제는, 곰치국 아니 물곰탕이 더없이 좋다.

음식이 매력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음식의 맛은 변하지 않지만, 변화하고 성장한 나의 모습에 따라 음식은 전혀 다른 맛을 보여준다. 나를 돌아보게 한다.


음식 안에는 누군가의 사연과 추억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국물 몇 술 뜨기도 버거웠던 한 초등학생은 제법 머리가 커서 제 갈 갈을 찾아가는 중이다. 다름 아닌 음식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의 직업을 선택해서 살아가고 있다. 기분이 어떻냐고?


행복하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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