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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연 Feb 18. 2016

김창옥, 그가 소통을  이야기하게 된 이유

생애 두 번째 인터뷰

이 글을 쓴지가 벌써 3년이다. 생애 두 번째 인터뷰 기사였고, 서툴고 많이 모자라다. 하지만, 인턴 시절 나의 많은 고민이 녹아있고 설렘과 열정이 깃들어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해야 하는 의무도 없었다. 그저 인턴이 끝날 때 '빈손으로 나가지 말자는 의지'와, 이 기회에 평소 좋아했던 김창옥 교수님과 꼭 한 번쯤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개인적 욕심이 있었다.

모교인 서울여자대학교를 통해 스케줄과 연락처를 알아냈고, 스케줄을 담당하는 분께 '교수님과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다. 한 달 뒤 학교에서 수업이 있으니,  그때 찾아오면 인터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한 달 뒤 서울여대를 찾아가 얼굴을 뵀다. 과거 교수님의 교양수업을 들었던 나를 어렴풋이 기억하고 계셨다. 수업 전 인사를 나눈 뒤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들었고, 수업이 끝난 뒤 한두 마디의 멘트만 따도 좋겠다 생각했는데, 선뜻 저녁 식사자리에 함께 가지 않겠냐고 제안해 주셨다. 그 덕분에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래는 기사 전문입니다.)





"키 크고 잘생기고 막 옷 잘 입고 그런 오빠들 부담스럽죠? 근데  부담스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오빠들은 여러분 안 좋아합니다."

짓궂은 말에도 학생들은 그야말로 '빵빵'터진다. 지난 4월, 서울여자대학교의 작은 강의실에서 만난 김창옥 교수(39·서울여자대학교 겸임교수)는 열정적인 강의를 펼치고 있었다.

김 교수는 학생들에게 뚱뚱해도, 남자친구와 헤어졌어도, 가정이 화목하지 않아도 '나 자신은 소중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는 항상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 '자존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듣고 알게 된 건 불과 7~8년 전 이죠. 그 전까지는 내 자존감이 낮았다는 사실도 모른 채 살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이야기해 준 적 없어요.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확인받을 때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항상 사고를 치는 청각장애인 아버지와 불만 가득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주기적으로 다투는 부모님 밑에서 그는 열등감을 가득 품고 성장했다. 제주도에서 공고를 졸업한 뒤 재수를 해서 전문대에 지원했지만,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어머니에게 부끄러운 존재로 여겨진 그는 소중하지 않았던 자기 자신을 없애려는 시도를 했다. 하지만 그마저 뜻대로 되지 않았다.

25살. 우여곡절 끝에 경희대 성악과에 입학했다. 원하던 대학교에 입학하면 사라 질 줄 알았던 열등감이 새로운 형태로 그를 따라다녔다. 자신은 만지는  것마다 황금알을 만드는 '미다스의 손'이 아니라 '마이너스의 손'이었다고 비유했다.

“내 자존감이 너무 낮으니까 내가 들어간 학교가 우스웠어요. 나에게 마음을 허락해준 사람도. 자존심만 엄청 세고 자존감은 낮은 이상한 사람이 돼 있더군요. 이게 고쳐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연을 시작하고도 ‘어느 대기업에서 강의했다. 유명인사를 만났다’ 이런 걸 자랑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소중하고 대단한 사람으로 여겨주길 바랬죠. 그런데 마음 한편이 씁쓸했어요. 사람들 앞에서 재미있게 강의하고 난 뒤에는 허탈하고 외로웠던 거죠. 강연만 끝나면 핸드폰을 찾아 헛헛한 마음을 달래 줄 친구들에게 전화하기 바빴습니다. 그러던 중 하버드대학교 교수였던 헨리 나우웬의 책의 한 대목을 읽고 많이 자유로워졌습니다. ”


김 교수는 가톨릭 신부이면서 심리학자인 헨리 나우웬이 우울증에 시달리다 라르쉬라는 지적 장애인 공동체에서 겪은 일화를 찬찬히 설명했다. 하버드대학교를 알리 없는 장애인들에게 헨리 자신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마치 ‘신이 인간을 대하는 방식’처럼 한 인간을 둘러싼 화려한 명함이 아닌, 존재 자체에 대한 물음을 통해 깨달은 것이 그의 마음을 치유했다는 것이다.

“그걸 보고, ‘아! 내가 앞으로 많은 커리어를 쌓는다고 해도 그러한 것들이 나 자신이 되는 것은 아니구나’ 깨달았어요. 돈이나 경력들이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것으로 인해서 내가 소중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죠. 지긋지긋한 방황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신이 인간을 대하는 방식처럼 나도 나 자신을 그렇게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창옥 교수는 일명 ‘소통’ 전문가로 불린다. 그는 ‘소통형 인간’ ‘유쾌한 소통의 법칙 67’ 등 저서를 통해, 수 많은 사람들과의 만나는 강연장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가족·연인·친구 등과 같은 개인의 범주를 시작으로 사회가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 그가 ‘소통’을 이야기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제주도라는 고립된 섬에서 태어나 자라고, 가족 사이에서 항상 소통의 결핍을 겪었습니다. 가끔은 터져버릴 듯 한 답답함도 느꼈습니다. 배움과 문화에 대한 갈급함. 이런 결핍들이 나팔꽃이 햇빛을 보려고 하는 것처럼, 목마름이 물을 마시게 한 것처럼 소통에 대한 갈망으로 표출됐죠. 불통이 낳은 소통, 단절이 낳은 소통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받았던 상처는 오히려 그를 무대 위에서 청중들과 진심으로 마주할 수 있는 백그라운드가 됐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칭찬·위로·응원이 에너지가 되듯이 결핍도 에너지가 될 수 있습니다. 섭섭하고 서운한 감정들 상처받은 것들을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단 거죠. 나의 인생의 에너지는 나의 길에 대한 사랑. 아버지와 가족에 대한 결핍이라는 정의를 내렸습니다. 아버지의 결핍이 큰 에너지가 됩니다.”


그가 강연했던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15분)의 유튜브 조회수는 300만 건을 넘어섰다. 내로라하는 강연 계 인사들의 영상 클릭수 보다 자릿수가 이미 달랐다. 방송과 강연을 통해 유명세를 탔지만 정작 그가 원하는 '진짜 길'은 완벽한 모습을 갖추지 않은 듯했다. 꿈을 이룬 것처럼 보였던 그에게도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숙제들이 남아있었다.

“제가 원하는 건 유명해지는 게 아니에요. 정말 제가 원하는 무대를 만들어서 소통하고 싶어요. 프로레슬링과 이종격투기를 예로 들 수 있어요. 지금까지는 이미 각본이 잘 짜여 있는 프로레슬링 경기를 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이종격투기처럼 최소한의 룰만으로 진행되는 경기를 하고 싶어요. 청중과의 소통을 통해 함께 만들어가는 진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김창옥 교수는 자신의 강연을 들으며 웃는 청중들의 미소를 볼 때 감동을 넘어 감격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대에 서서 수 많은 사람들의 미소로 힘을 얻고, 우리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치유받는다.




브런치에는 '브런치 만을 위한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몇 주째 고이 모셔져 있는 서랍 속 글들을 보다가, 과거의 글이지만 오롯한 내 공간에서 다시 공유하고 싶은 욕심에 꺼내보았다.


어리바리했던 나의 두 번째 인터뷰. 너그러이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맛있는 태릉 갈비까지 사주셨던 교수님.
보충할 내용이 있어 전화로도 여러 차례 귀찮게 했는데도 진지하게  이야기해주셔서 참 감사했다.


2013년 인터뷰 이후 김 교수님은 TV 방송 그리고 영화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14년 포프리 쇼 방청을 통해 얼굴을 뵌 후로 개인적으로 연락을 드리지는 못하고 있지만 언제나 '팬'으로서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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