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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철 Feb 01. 2023

살 찐 김에 추억팔이

설 연휴를 지내고 보니 살이 포동포동 올랐다. 어쩔 수 없다. 매 끼니마다 맛의 즐거움을 만끽했으니 무거운 몸은 당연하겠지.


시작은 순대국밥과 오징어볶음이었다. 나의 본가, 처가와는 전혀 연이 없는 경북 예천의 맛집이었다. 사실 이번 설엔 여러 이유로 부모님만 우리 집에서 하루 묵고 가셨고, 처가에는 돌아오는 주말에 방문할 일정이었기에 연휴 초에 아내와 둘이 짧게 여행을 갈 수 있었다. 여행지는 모노레일을 타고 싶은 단순한 마음으로 결정한 문경이었는데, 흘러가는대로 여행하는 나와 아내의 스타일이 그대로 반영되어 우리는 점심으로 옆 동네 예천으로 가게 되었다.


나와 예천은 2010년 어릴 적 작은 패기로 연이 닿은 곳이다. 대학교 2학년 무료한 여름 방학의 어느 날, 나는 학교 선배들과 깉이 살던 자취방에 널브러져 있다가 문득 떠나고 싶어쳤다. 나는 충동적인 행동에 흥분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날 밤 네이버 사다리를 통해 행선지를 경북 예천으로 정해서 다음 날 일찍 동서울 터미널로 향했다.


2010년 여름은 애플이 아이폰3gs를 필두로 대한민국을 공습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나는 고아라폰으로 사진을 찍던 가난한 대학생이었다. 다시 말해 종이 지도를 통해 목적지로의 경로를 파악해야 했는데, 그 당시 예천군 버스정류장에는 시간표도 없었고 있다 한들 믿을 수 없는 정보였다.


물론 미리 알아봤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갑작스럽고 준비되지 않은 여행 덕분에 많은 추억을 남겼다. 어느 원림과 정자를 향해 걸어가는 길에서 젊은 사람 걸음으로 20분이면 도착한다는 할머님의 말씀을 철썩같이 믿고 2시간을 넘게 걷다가 결국 생애 첫 히치하이킹을 해봤고, 어느 슈퍼에 들러 환타를 하나 사면서 근처 큰 절에 가려고 한다고 하니 버스가 끊겼을 거라면서(사실 끊기지 않았다.) 주인 아저씨는 1톤 트럭으로 굽이굽이 산길을 태워주셨고, 회룡포와 삼강주막은 대중교통으로 갈 수 없다면서 본인의 자전거를 빌려주셨던 자전거 가게 아저씨를 만난 일 등등 크고 작은 많은 재미가 있었다.


2010년 예천에서 겪었던 소소한 여행이 스무살에게는 참 특별했고, 13년이 지나 아내와 같이 그 추억을 공유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그 추억 여행에 동참해준 아내도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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