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포츠IP를 둘러싼 경쟁, 그리고 쿠팡의 메기효과
* 중앙일보와 '크랩'에 쿠팡플레이의 스포츠패스와 관련해서 코멘트를 드렸습니다. 기사에 언급되지 않은 전체 코멘트를 아래에 정리해서 공유드립니다.
* 중앙일보 관련기사: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43869
* 크랩 관련 영상:
https://youtu.be/SSvpXqzXNrU?si=XAGK5IMxmaSjfoSy
Q) 최근 쿠팡플레이가 스포츠 중계 서비스를 별도 유료 상품으로 출시하는 등, OTT들의 스포츠 중계권 경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은 특정 경기를 보기 위해 여러 플랫폼을 구독해야 하는 ‘파편화’와 비용 부담을 겪고 있습니다.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경쟁은 소비자 후생을 증가시켜야 하는데, 왜 스포츠 미디어 시장에서는 반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A) 이 문제는 단순한 플랫폼 간의 경쟁이 아니라, ‘스포츠 IP의 속성 변화’라는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10년 전 우리가 스포츠를 무료로 즐기던 시기는, 글로벌 리그들이 전 세계 팬덤을 모으던 단계였습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프리미어리그, NBA 등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 충성도 높은 팬덤을 기반으로 한 강력한 ‘독점 IP’가 되었고, 본격적인 ‘수익화’ 단계에 진입했습니다.
OTT들의 경쟁은 이 독점적 IP를 확보하기 위한 출혈 경쟁에 가깝고, 이는 자연스럽게 IP 권리자(리그)의 협상력 증대와 중계권료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나라의 GDP 수준을 고려할 때, 해외 시장에 비해 국내 스포츠 스트리밍 가격은 아직 저렴한 편이란 점에서 이러한 시도가 더 확대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결국 지금의 현상은 한국 스포츠 미디어 시장이 고도로 상업화된 글로벌 모델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성장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Q) 비용 부담은 늘었지만, OTT들의 경쟁이 중계 품질 향상과 같은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A) 경쟁이 반드시 품질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보장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문제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모두 내포한 ‘미묘한’ 영역입니다. 선순환의 경우, 독점 중계권을 확보한 사업자가 품질 향상에 투자하고 IP 홀더와 협력해 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워나갑니다. 하지만 악순환의 경우, IP 홀더는 품질 관리 없이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른 곳에 권리를 팔고, 사업자는 막대한 중계권료 부담 때문에 품질에 투자하지 않은 채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할 위험이 있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사업자의 장기적인 투자 의지와 전략에 달려 있습니다.
Q) 쿠팡플레이는 스포츠를 통해 이용자를 락인시킨 후 별도 유료 상품을 출시했습니다.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A) 쿠팡의 방식은 기존 미디어 산업의 관성에서 벗어난, 스타트업의 접근법입니다. 이는 관행에 젖어있던 국내 미디어 시장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메기 효과’를 낳는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분명 있습니다. 특히 아직 성장 잠재력이 남은 국내 스포츠 미디어 시장의 유료화를 이끌고 산업 규모를 키우는 데 기여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다만 이들의 파괴적 혁신이 기존의 ‘좋은 관행’까지 무너뜨릴 수 있다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에, 산업 전체의 질서를 해치지 않는지 지속적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Q) 쿠팡이 주요 리그를 독점 중계하면서, 여러 서비스를 구독할 필요가 없어 편리하다는 시각과 독점으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이 공존합니다. 또한, 막대한 중계권료를 감당할 수 있는 기업이 쿠팡 외에는 없다는 현실적인 지적도 나옵니다.
A) 파편화된 콘텐츠를 한곳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은 분명 단기적인 편의성을 높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독점 구조가 장기적으로는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역시 타당합니다. 쿠팡과 같은 사업자는 편리함을 제공하는 대신, 한국 팬덤이 어느 정도의 비용까지 지불할 의사가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시험하며 가격을 조정해 나갈 것입니다.
쿠팡이 막대한 중계권료를 감당할 수 있는 이유는, 이를 단순한 콘텐츠 투자가 아닌 ‘전략적 투자’로 보기 때문입니다. 중계권 비용을 구독료만으로 회수하는 것은 불확실성이 큰 사업이지만 , 쿠팡은 이를 와우 멤버십과 커머스라는 거대한 ‘생태계’의 가치를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합니다. 즉, 콘텐츠 사업의 손익을 넘어 전체 생태계의 가치를 보고 베팅할 수 있기에, 다른 미디어 기업이 뛰어들기 어려운 과감한 투자가 가능한 것입니다.
Q) 쿠팡이 이토록 스포츠 콘텐츠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며, 이것이 ‘보편적 시청권’을 침해한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쿠팡의 핵심 전략은 ‘락인(Lock-in) 효과’의 극대화입니다. 스포츠 콘텐츠는 충성도 높은 팬덤을 길게(시즌 내내) 붙잡아 둘 수 있어, 멤버십을 유지시킬 강력한 동기가 됩니다. 짧은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이탈률이 낮기 때문에, 커머스 생태계에 이용자를 묶어두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인 셈입니다. 여기에 ‘스포츠 패스’라는 프리미엄 상품을 더해 락인 효과를 여러 겹으로 강화하고 있습니다.
‘보편적 시청권’은 국가대항전과 같이 공공성이 매우 강한 경기에 적용되는 개념으로, 모든 프로스포츠에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프로스포츠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안정적인 수익 모델이 필수적이며 , 합리적인 유료화는 리그와 중계 품질의 동반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는 공공의 영역과 상업적 미디어의 영역을 구분하고, 시장의 성숙을 통해 스포츠 산업 전체의 발전을 도모해야 할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