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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챠의 위기, 돌아보기

치열한 OTT 경쟁, 그 이후

by 이성민

OTT서비스 왓챠가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스브스뉴스와 인터뷰했습니다. 줌으로 인터뷰한 내용을 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영상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KnrV6g6hMgg?si=U108w64Bz86Bmu6O


Q. 왓챠의 위기, 어떻게 시작되었나
최근 토종 OTT 1세대인 왓챠가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면서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어떠한 배경에서 지금의 위기에 이르게 된 것인가요?

A.
이번 회생 절차는 파산과 달리, 기업을 다시 살리기 위한 과정입니다. 직접적인 원인은 2021년에 유치했던 490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 만기 연장에 실패하면서, 채권자들이 법원에 회생을 신청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위기의 진짜 뿌리는 2021년, ‘오징어 게임’의 성공으로 촉발된 전 세계적인 ‘오리지널 콘텐츠 경쟁’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전까지 왓챠는 구작 영화를 중심으로 자본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며, 취향 중심의 탄탄한 팬덤을 확보한 VOD 서비스였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시기 OTT 시장이 급격히 주목받고 넷플릭스가 ‘오리지널’이라는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자, 왓챠는 ‘니치한 OTT로 남을 것인가, 경쟁에 참여할 것인가’의 기로에 섰습니다.

결국 왓챠는 경쟁을 택했고,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을 위해 49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당시에는 이 경쟁에서 왓챠가 승부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결정은 결과적으로 OTT 시장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냉각되면서 모든 악순환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Q. 왓챠가 가졌던 고유의 정체성은 무엇이었나
위기의 원인이 ‘오리지널 경쟁’에 휘말렸기 때문이라면, 경쟁에 뛰어들기 전 왓챠가 가지고 있던 본래의 정체성과 강점은 무엇이었습니까?

A.
왓챠는 방송사나 통신사가 만든 티빙, 웨이브와는 출발점부터 다른 회사였습니다. 카이스트 전산학과 출신인 박태훈 대표가 데이터 기술을 기반으로 미디어 시장을 혁신하겠다는 아이디어로 시작한 스타트업이었습니다. 영화 평점 사이트 ‘왓챠피디아’를 통해 방대한 취향 데이터를 쌓은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왓챠의 핵심 정체성은 바로 이 데이터를 활용해 ‘시장에서 저평가됐지만 이용자들의 만족도는 높은’ 작품들을 저렴하게 수급하여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존 방송사 기반 OTT들이 데이터에 취약했던 반면, 왓챠는 데이터로 이용자에게 최적의 콘텐츠를 추천하는 혁신을 보여줬습니다. 이 때문에 왓챠가 데이터로 헐리우드를 꺾은 넷플릭스처럼 될 수 있다는 시장의 기대가 컸고, 실제로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하던 시기에 맞춰 VOD 서비스를 시작하며 주목받았습니다.


Q. 왜 넷플릭스는 성공하고, 왓챠는 위기에 빠졌나
왓챠도 ‘좋좋소’, ‘시맨틱 에러’ 등 임팩트 있는 오리지널을 선보였습니다. 그런데 왜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전략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왓챠는 같은 전략으로 오히려 위기에 빠지게 된 것일까요?

A.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구독자 기반’에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190개국에서 서비스를 하기에, 막대한 제작비를 전 세계 수억 명의 구독자에게 나누어 부담시킬 수 있습니다. 반면 왓챠는 훨씬 작은 국내 구독자를 기반으로 비슷한 수준의 제작비 상승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2021년~2022년은 한국의 드라마 제작비가 천정부지로 치솟던 시기였습니다.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한국에서의 제작이 자국보다 10분의 1 비용으로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효율적인 ‘글로벌 전략’이었습니다. 하지만 왓챠를 포함한 국내 OTT들에게는, 글로벌 플레이어들이 뛰어들어 과열된 시장에서 비용 효율이 전혀 나지 않는 힘겨운 싸움이었습니다. 결국 당시의 모든 국내 OTT들은 수백, 수천억의 적자를 떠안게 되었고, 왓챠 역시 그 흐름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Q.왓챠가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많은 코어 팬들이 왓챠의 위기를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왓챠가 다시 살아날 방법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A.
솔직히 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결국 ‘코어 팬덤에게 돌아가 비용 효율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왓챠의 적자가 줄어든 것은 오리지널 투자를 멈췄기 때문입니다. 이는 왓챠가 본래의 정체성을 지켰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실제로 애니메이션 전문 OTT ‘라프텔’이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중드 전문 ‘모아’나 BL 전문 ‘헤븐리’처럼 니치한 시장을 공략하는 작은 OTT들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들처럼 비용을 효율화한 VOD 시장으로 돌아가, 뾰족한 취향을 중심으로 한 플랫폼으로 생존을 모색하는 것이 왓챠가 택할 수 있는 길입니다. 다만, 490억 원이라는 거대한 부채를 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가장 큰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Q. 왜 OTT 시장은 여전히 어려운가
왓챠뿐 아니라 많은 OTT 플랫폼들이 합병하거나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옵니다. 이 시장의 본질적인 어려움은 무엇일까요?


A.
이러한 현상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며, 2021~2022년의 과잉 투자와 버블 이후 나타나는 전 세계적인 흐름입니다. 디즈니플러스조차 비용 문제로 수많은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구조조정을 했습니다.
근본적으로 하나의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대형 ‘구독형 OTT’의 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시청자들의 영상 구독에 대한 ‘지불 의사’가 생각만큼 높지 않기 때문입니다. 1인당 월평균 지출액이 2~3만 원 수준이라면, 대부분 1~2개의 서비스만 이용하게 됩니다. 결국 시장은 소수의 보편적인 대형 OTT와, 다수의 특화된 니치 OTT 형태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왓챠의 위기는 바로 이 거대한 시장 재편의 과정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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