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못 만드는가를 넘어서,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로
케이팝데몬헌터스가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며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왜 우리는 이런 작품을 만들지 못했을까?”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인터뷰한 내용이 기사로 나왔습니다. 기사에는 담기지 못한 전체 이야기를 글로 정리해서 공유드립니다.
https://www.newsis.com/view/NISX20250825_0003302478
Q. 케이팝데몬헌터스는 Kpop과 한국 문화를 소재로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정작 한국에서는 왜 이런 대작 애니메이션이 나오기 어려웠을까요? 또한, 앞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A. 한마디로 답하기 어려운, 여러 차원의 문제가 얽혀있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해당 작품과 같은 글로벌 스케일의 애니메이션 제작이 어려웠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제작 생태계의 한계입니다.
무엇보다 이 정도 규모의 대작 애니메이션을 감당할 수 있는 제작 및 투자 기반이 국내에는 부재합니다. 물론 OTT 환경의 성장과 더불어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의 중요성은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일부 제작 역량은 갖추고 있을지 몰라도, 대규모 자본의 투자와 제작, 유통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산업 생태계가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습니다. 더불어, 다소 모험적일 수 있는 소재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금융 환경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둘째, ‘외부자의 시선’의 부재를 꼽을 수 있습니다.
해당 작품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기획과 제작을 주도한 이들이 내부자도 외부자도 아닌, 소위 ‘디아스포라’에 해당하는 이민자 세대였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내부자의 디테일을 포착하는 시선과 외부자로서 한국 문화의 매력 포인트를 객관적으로 발굴하는 시선을 동시에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내부에서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글로벌 시장이 한국 문화에서 매력을 느끼는 지점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외부의 시선’은 우리 내부에선 본질적으로 갖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셋째, 글로벌 시장에 대한 이해와 경험의 축적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흔히 콘텐츠의 성공을 ‘제작’ 역량의 문제로만 국한해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례는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소니(Sony)와 같은 기업은 단순히 애니메이션을 잘 만드는 회사가 아닙니다. 콜롬비아 픽처스를 인수하고, 크런치롤(Crunchyroll)과 같은 버티컬 OTT를 운영하며,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과 유연하게 협력하는 등, 오랜 시간 글로벌 시장의 문법을 익히고 체급에 맞게 적응해 온 ‘글로벌 기업’입니다. 이러한 의사결정과 협업은 제작 역량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국내 기업들도 CJ ENM의 해외 사업자 인수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이러한 글로벌 프로젝트 경험과 업력이 더 깊이 축적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사실 ‘한국은 왜 이걸 못 만드냐’는 질문 자체가 문제의 본질을 비껴갈 수 있습니다. 중국이 ‘쿵푸팬더’를 만들지 못했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 질문의 저변에는 ‘우리 것’을 가지고 ‘우리’가 알려야 한다는 강박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글로벌 경쟁력은 ‘내 것’을 파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 공급하는 글로벌 마인드에서 출발합니다. 일본이 한국을 소재로 애니메이션을 만든 이유는 그것이 ‘시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한국의 매력’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만 갇혀서는 안 됩니다.
CJ가 전 세계에 고추장을 팔려고 한 것이 아니라, ‘만두’라는 보편적인 시장을 보고 그 안에서 한국의 특색을 녹여낸 ‘비비고’를 만든 것이 좋은 사례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문화적 자산을 재료로 삼되, 공략해야 할 대상은 글로벌 시장의 보편적 수요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우리는 시장성이 있다면 태국 문화를 소재로 한 글로벌 콘텐츠를 만들 수도 있어야 합니다.
결국 우리가 마주한 과제는 단순히 특정 장르의 제작 역량을 키우는 것을 넘어, 우리 산업 생태계 전체가 한 단계 더 성숙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단기적인 추격을 넘어, 글로벌 시장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우리만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장기적인 안목과 전략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러한 노력이 축적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K-콘텐츠의 탄생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