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하야마 아마리/ 위즈덤하우스/ 초판 37쇄/ 2013.10.25)
- 다시, 해보자 -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는 몇년 째 주기적으로 읽는 책이다. 처음 책을 접한 건 군대 이등병때였다. 그때까지만해도 군대에서 보내는 21개월을 허투로 보내면 안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또 전역한 사람 대부분이 군대가 의미없다며 아까운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군복무 21개월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허투로 쓰고 싶지 않았다. 이 귀한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서, 내 인생에 여백으로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때마침 군대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하야마 아마리, 여백이란 의미를 갖고 1년의 시한부 삶을 꽉꽉 채우는 저자의 삶이 마치 내가 지향해야하는 삶처럼 보였다. 그 뒤 이 책을 읽으며 단 1분도 허투로 보내지 말자며 다짐하고, 매일 연등을 신청하고 책을 읽고 공모전에 지원하며 군생활을 보냈다.
그 뒤 이 책은 내가 무얼해야할지 모르겠을 때, 나태해졌을 때, 실직 상태일 때 찾아서 읽는다. 또 생일일 때 읽는다. 며칠전 생일을 기념해 이 책을 다시 짚었고,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을 또다시 읽어 나갔다.
같은 책을 여러번 읽는데도 신기한게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다르다. 아마리의 삶이 보였던 적이 있고, 미나코의 삶이 보인 적도 있다. 이번에는 아마리의 삶이 다시보였고, 60대 맘의 말도 다시 보였다. 아마리가 말하는 길이 무수히 많다는 말이 이번에는 특히 기억 남는다.
지금 내 모습은 누구에게도 떳떳하거나 당당하지 못한 모습이다. 심지어 나 자신에게조차 당당하지 못하고 후져보인다. 잘되면 좋겠는데, 잘 안되는 게 많고 잡힐듯 했던 회사도 끝내 내 손이 닿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스스로 움직일 동력을 조금 상실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순 없다. 움직여야 한다. 움직이자. 발가락부터 움직이자. 발가락부터 움직여서 도착한 곳이 어디이고,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가만히 안주해 멈춰있는 것보단 훨씬 낫다.
책의 서두에 한국도 취업이 많이 힘들다는 걸로 안다며, 자신의 이야기가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거듭 책을 읽다보니 처음의 감동과 힘은 덜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움직여라고 말해주는 느낌은 받았다. 이 느낌을 잊지 말고 다시 해봐야겠다.
밑줄
- 정말이지 인생의 구석구석에서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리 무모하더라도 일단 작정을 하고 나면 무슨 일이든 생길 수 있다. 정말 신기한 것은 내가 '움직였다'는 것이다. 원래의 나라면 좁은 방바닥에 드러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머릿속에서만 수십 채의 집을 짓고 허물며 게으른 몽상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 나였다. (p.61)
- 누군가 자신을 위해 매순간마다 꼼꼼히 지적해준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다른 곳에서라면 평생 자각하지 못할 것들을 나는 마담에게서 아주 많이 배우는 셈이다.(p.88)
- 뭐든 그렇겠지만 일류니 고급이니 하는 말은 늘 조심해야 해. 본질을 꿰뚫기가 어려워지거든. 출세니 성공이니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만의 잣대를 갖누 거라고 생각해. 세상은 온통 허울 좋은 포장지로 덮여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기만의 눈과 잣대만 갖고 있다면, 그 사람은 타인의 평가로부티 자신을 해방시키고 비로소 '자기 인생'을 살 수 있을 거야. 그게 살아가는 즐거움 아닐까? (p.122)
- 60넘어서도 자기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게 뭔지 잘 찾아봐. 그걸 지금부터 슬슬 준비하란 말이야. 내가 왜 이 나이 먹고서도 매일 술을 마시는지 알아? 빈 잔이 너무 허전해서 그래. 빈 잔에 술 말고 다른 재미를 담을 수 있다면 왜 구태여 이 쑤 걸 마시겠어? (p.156)
- 1년 동안 나를 목표 지점까지 갈 수 있게 해준 모든 수단들과 작별한 뒤, 나는 다시 벌거벗은 기분으로 세상 앞에 섰다. 아직은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길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p 231)
- 나는 지금도 가끔 라스베이거스에서의 6일을 떠올리곤 한다. 기나긴 인생에서 6일이라는 시간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그 시간 동안 방바닥에 드러누워 만화책을 볼 수도 있고, 술에 취해 비틀거릴 수도 있으며,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자포자기하며 지낼 수도 있다. 예전의 나는 수많은 세월을 그렇게 휴지조각처럼 살았었다. 남은 인생마저 계속 그럴 거라면 그냥 죽는 것과 다른게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게 '라스베이거스에서 아낌없이 불태우고 죽으리라'는 주문을 걸었고, 매일매일 디데이를 향해 카운트다운을 가동했다. 그리고 그 마법은 통했다. 이제 나는 마법을 믿는다. (p.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