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흑자를 낸 티몬, 적자 규모를 확 줄인 쿠팡
최근 온라인 유통업체 (이커머스)에 반가운 소식들이 날아들고 있다. 가장 먼저 티몬이 2020년 3월 1억 6000만 원의 월간 흑자를 기록했다. 2010년 나란히 시작한 쿠팡, 티몬, 위메프 등 소셜커머스 중에 처음이다. 쿠팡도 2019년 매출액이 7조 1530억 원을 달성했다. 전년 동기 대비 64.2% 증가한 수치다. 더 놀라운 점은 영업손실도 줄였다는 것. 2019년 영업손실은 7205억 원으로, 2018년 1조 1279억에 비해 36.2% 감소한 수치이다.
영업이익도 아니고, 왜 영업손실이 계속 나는데도 사람들은 쿠팡에 대해 열광하는가? 쿠팡은 애초에 시작부터 아마존을 벤치마킹한 회사이다. 매출에 비해 영업이익이 볼품없는 건 아마존 트레이드마크이다. 아마존은 최근 몇 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영업이익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 리먼브라더스는 2001년 지금 구조대로 사업을 진행하면 아마존은 1년 내로 파산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20년이 흐른 지금 리먼브라더스는 사라졌고 아마존은 남아있다...)
아마존의 재무 상황은 더 큰 그림이었다. 버는 족족 인공지능 개발이나 유통설비에 투자를 하고, 아마존웹서비시즈(AWS) 같은 다른 사업으로도 확장하며 장기적인 경쟁력을 갖춰왔으니까 말이다. '계획된 적자'라는 것도 이제 잘 알려진 개념이다.
그렇지만 투자자들도 그냥 자기 돈을 태우는 걸 보고 있지만은 않는다. 아무리 계획된 적자래도, 뭔가 보여줄 게 있어야 한다. 쿠팡의 폭발적인 매출 증가나 티몬의 수익화는 그들의 투자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이커머스들이 드디어 실적을 조금씩 보여준다는 것은 분명 괄목할 만한 성과이지만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why'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커머스들은 성장했는가? 그리고 그 성장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이커머스 온라인 유통업체가 차별화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겠다. 1) 쿠폰을 뿌리며 가격 우위를 노리는 최저가 전략, 2) 빠르고 정확한 배송, 3) MD의 역량을 바탕으로 하는 제품 및 콘텐츠 차별화. 하나씩 짚어보자.
먼저 1번, 최저가 전략을 보자. 사실 매출을 키우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렇지만 그만큼 독이 될 수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판매가를 낮추려면 공급가도 낮아져야 하는데, 사실 다른 유통업체들보다 그렇게 큰 차이를 두기 어렵다. 최영준 티몬 최고재무책임자(CFO)의 말을 인용해보자.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고객이 쇼핑 니즈가 있을 때마다
여러 유통 채널 중 그 니즈를 가장 잘 채워줄 수 있는 곳을 이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령 에어팟은 어디서 사나 똑같으니 네이버에서 최저가 검색을 해서 사고, 된장찌개에 넣을 두부는 쿠팡이나 이마트에서 산다. 또 자기 전에 허한 마음을 달래려 쇼핑할 때는 티몬이나 위메프를 찾고, 옷은 무신사나 지그재그에서 산다. 온라인 쇼핑은 방문하는 데 시간이나 비용이 들지 않아 쇼핑몰에 대한 ‘전환 비용’이 낮기 때문이다. 이런 이커머스 시장에서 할인쿠폰을 사용해 성장하겠다는 전략은 업의 본질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마존 성공 사례에 대한 피상적인 모방에서 만들어진 허상일 뿐이다.”
아야, 뼈 부러져서 순살치킨 되겠다. 물론 최저가 전략도 필요할 때가 있다. 초반 매출을 늘리면서 인지도를 높이고 킥스타트를 하기 좋은 방법이긴 하다. 그러나 충성고객을 만들거나 락인 같은 건 기대하기 어렵다. 추가적인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그럼 다음 전략을 살펴보자.
다음은 빠르고 정확한 배송이다. 여기서 정확하다는 것은, 원하는 시간대를 맞춰준다든가, 신선제품을 안전하게 배송한다든가 하는 서비스이다. (마켓컬리의 풀콜드체인처럼) 아마존이 배송 혁신의 대표주자이다. 아마존은 미국 전체 인구의 72%에게 당일 및 익일 배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진짜 엄청난 일이다. 아마존은 도대체 이걸 어떻게 실현한 걸까? 아마존의 유통 전략에 대해서는 나보다 훨씬 대단한 전문가들이 많으니 간단하게만 알아보자. 일단은 인공지능의 도입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아마존은 고객이 장바구니에 담기만 해도 고객의 구매 확률, 배송 예상 주소 등을 정확하게 계산한다. 물류 창고에서는 키바(Kiva)라는 납작한 로봇을 사용하는데, 이 덕에 주문부터 제품 상차까지 걸리는 시간을 평균 60분 이상에서 15분까지 줄였다. 극단적인 효율화의 결과라는 뜻이다.
'한국의 아마존'으로 불리는 쿠팡도 여기서 착안하여
유통망을 빠르게, 안정적으로 구축하였다.
로켓배송이야말로 쿠팡의 메인 USP(Unique Sales Point)이다. 로켓배송을 기반으로 한 로켓프레시, 로켓선물이나 무료 교환/환불이 가능한 로켓와우클럽 모두 이런 유통망을 기반으로 한 전략들이다. 쿠팡은 2014년 물류센터인 로켓배송센터 27개로 로켓배송을 시작하여 5년 만에 2019년 그 6배인 168개까지 성장시켰다. 로켓배송센터에서 10분 거리 안에 사는 '로세권' 소비자 역시 동기간 259만 명에서 3400만 명으로 13배 증가했고, 선매입한 재고 역시 303억 원어치에서 7119억 원치로 23배 증가했다. 물론 인건비도 2014년 1천억 원에서 지난해 1조 4천억 원으로 5년간 14배 증가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투자였다. 덕분에 쿠팡은 이커머스의 TOM (Top of Mind) 브랜드로 급부상했다. 규모가 확보됐으니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혹은 유통의 속도가 아닌 질을 개선할 수도 있다. 마켓컬리가 시작한 새벽배송을 생각해보자. 마켓컬리는 기존에 입고부터 배송까지 저온으로 유지하던 '콜드체인'을 산지에서의 수확부터 집 앞까지 저온으로 유지하는 '풀콜드체인'으로 탈바꿈했다. 신선하게 저온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배송해주겠다는 것이다.
풀콜드체인의 핵심은 설비이다. 저온 물류 창고는 물론, 냉장탑차도 필요하다. 마켓컬리의 배송차량 550대는 모두 냉장탑차이다. 마켓컬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포장용지도 혁신했다. 스티로폼 상자에 보냉 비닐을 덧댄 첫 박스에서 시작했고, 환경을 위한 '올페이퍼 챌린지'를 통해 종이박스와 워터팩을 활용한다. 이 종이 포장재는 내부 패키징팀에서 2016년부터 연구를 진행해 100% 재활용 가능한 종이로 제작하고, 이중 골판지를 사용한 공기층 구조로 보냉력을 높였고 특수 코팅을 통해 습기에 장시간 노출되어도 내구성이 좋다. 이 냉동 보냉 박스도 모든 조건에서 12시간 이상 영하 18도를 유지해 상품의 품질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다고 한다.
위생이 가장 중요한 식료품을 구매할 때 믿음직스러울 수밖에 없는 유통망이다. 마켓컬리는 이런 풀콜드체인의 대상을 신선제품에서 화훼로도 확장하여 지난 2월 프리지아와 튤립을 판매하는 '농부의 꽃'을 출시했고, 40일 만에 10만 송이를 돌파했다. 마켓컬리도 아직은 '계획된 적자' 단계이지만 매출은 2017년 466억 원, 2018년 1571억 원(전년 대비 237% 성장), 2019년 4289억 원(전년 대비 173% 성장)을 기록했다.
그렇지만 이건 사실 미국 땅에서나 대단한 얘기이다. 내가 학생 시절 교수님께서 항상 하신 말씀처럼, "아마존이 그 커다란 미국에서 익일 배송이 되는데 우리나라에서 배송이 오래 걸리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미국은 한국의 98.2배이다. 그러니까 배송이 빠른 건 한국에선 디폴트다. 빠른 걸 기본으로 깔고 간다. 느리기도 힘들다. 기대치도 높다. 괜히 국가번호 +82의 나라가 아니다. 배송이 3일 이상만 넘어가도 언제 오냐고 불만이 터지게 된다. 쿠팡처럼 1등 정도가 아니면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차별화가 어렵다는 소리다.
한 마디로 판매하는 제품을 다른 곳과 차별화하거나, 콘텐츠를 만들어 단순한 쇼핑몰이 아니라 플랫폼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티몬이 선택한 길이 그렇다. 티몬은 타임커머스를 표방한다. 위메프 출신 이진원 대표를 영입한 2018년부터 시작한 전략이다. 일회적인 파격 특가를 통해 앱 접속 시간을 늘리고, 구체적인 구매 계획 없이 구경하는 윈도쇼핑을 온라인으로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전략이 적중하였는지 2019년 4분기에 2회 이상 구매 고객이 전체의 7%, 3회 이상 고객은 10%에 달한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7%p, 1.2%p 증가한 수치다. 타임커머스를 통해 최저가 아니면 안 사는 고객들의 무계획적 소비를 공략한 것이다. 쿠팡 하면 로켓배송이 떠오르듯, 타임커머스는 이제 티몬의 새로운 정체성이 되었다. 아직 규모가 작고 품목이 한정되어 있다는 한계는 있지만,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보인다. MD의 능력과 가격 협상이 더 중요할 것이다.
콘텐츠 강자 네이버를 볼까. 네이버는 최저가 검색 외에도 라이브 커머스라는 새로운 자체 콘텐츠로 판매를 늘리고 있다. 롯데아울렛 파주점이 지난 7일 네이버와 진행한 ‘아디다스 매장 털기’는 고객과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궁금증을 풀어주었고, 이 라이브 방송은 1시간 동안 4만 6000여 명이 시청했다. 하루에만 라이브 커머스를 통해 2500만 원, 네이버 쇼핑에서의 할인 이벤트까지 총 2억 40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단일 매장으로는 역대 최고의 매출이다. 코로나19가 여전히 만연한 시국에 적절한 형태의 커머스였던 셈이다.
우리나라의 유통 시장은 시장 규모에 비해 플레이어들이 많다. 작은 면적 때문에 유통이 강력한 진입장벽이나 경쟁력이 되어주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경쟁도 치열하고, 아마존처럼 하나의 절대 강자가 나오기 어려운 구조이다.
오히려 그래서 더 흥미진진한 시장이다. 각 플레이어는 각기 다른 전략을 가지고 가고 있다. 쿠팡은 로켓배송, 티몬은 타임커머스, 마켓컬리는 샛별배송, 네이버는 최저가와 라이브 커머스 등. 처음 쓸 때만 해도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는데, 각자 너무 달라서 쓸 말도 많고 찾아볼수록 재미있는 시장이었다. 이커머스는 이미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고, 성숙기로 접어들었다. 빠르게 성장하면서 각자의 색채를 만들어가고 있는 그들의 미래가 더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