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내 인생의 첫 책을 출판했다. 2019년 여름부터 출판사와 얘기를 시작했으니 출판 계약서를 쓴 시점부터 따지자면 1년이 넘었지만, 실제로 본격적으로 집필을 시작한 시점부터 따지면 1년 혹은 그보다 조금 짧은 기간 안에 집필 및 출판을 마친 것이다. ‘책을 출판하는 것’은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나 뿐 아니라 본인 이름으로 된 책을 집필하고자 하는 분들이 꽤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내 업무(해외에서 product management 업무) 관련된 얘기가 아닌 집필과 출판 관련된 얘기를 해보려 한다. 다만 아래 내용은 나 혼자의 첫 1회 집필에 대한 경험이며 일반화하긴 힘들다는 것을 알아두시길 바란다. 장문의 글보다는 FAQ 형식으로 독자분들께서 궁금해 하실 내용 위주로 적어보았다.
혹시 더 궁금한 부분이 있다면 본 글에 댓글로 달아주시면 답변 해드리겠습니다.
막연히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20대 후반부터 하기 시작했다. 내 블로그의 다른 글(‘나는 어쩌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을 보면 내가 어떻게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나와 있다. 삼성전자 신입사원 시절 매주 일요일에 블로그에 글을 썼고, 그 글을 다음 날(월요일) 아침에 회사 내 지인(내 상사들 포함)들께 뉴스레터처럼 보내곤 했었다. 이걸 2년 동안 했다. 그때 글쓰기의 재미를 알게 됐으며 ‘내 책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해외에 나와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내 경력이 한국인 기준에서 보면 일반적이진 않다는 걸 느꼈다. 나는 일단 ‘재밌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면 직무나 산업, 국가까지 옮기면서 새로운 경험을 찾아다녔다. 이런 과정에서 경험하고 느끼고 배운 점들이 한국에 있는 내 후배 또래(현재 기준 20대 후반 – 30대 중반)의 독자들께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을 줬다. 네덜란드로 이주 후 Booking.com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들을 블로그(inyongsuh.com) 및 브런치에 글로 올리기 시작했고, 그걸 계기로 퍼블리에 파이낸셜 타임즈 뉴스 큐레이터로 짧게 활동했었다. 그때 쓴 글 중 ‘소프트 스킬’ 관련 글이 있었고, 이 글을 본 출판사의 기획/편집 담당자가 이메일로 연락을 줘 ‘소프트 스킬’ 관련 책의 출판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운이 좋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 인연의 시작은 블로그에 지속적으로 올리던 글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요즘은 브런치북 공모전이나 독립 출판 등 출판을 위한 기회가 예전보다 많아졌다고 들었으나 나는 아직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야기를 풀어내기 힘들다.
초고(첫 원고)의 집필은 계약서 기준으로 7개월 정도로 잡았으나 실제로는 그보다 조금 더 긴 9개월 정도 소요됐다. (A4용지 약 120페이지 기준) 이 중에서도 실제로 ‘본격적으로’ 집필한 기간은 이보다 조금 더 짧았으니 집중할 수만 있다면 (직장인이더라도) 반년 정도면 초고 집필을 완료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단, 내 책은 내 경험 위주의 자기계발서로 리서치에 쏟은 시간이 집필 초기를 제외하곤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본인이 쓰고 싶은 책이 리서치에 많은 시간이 드는 내용이라면 이 부분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초고 이후 4회 정도 퇴고를 거쳤다. 이 부분에 4개월 정도 소요가 됐다. 초고를 완료하기 전에도 편집자에게 챕터별로 미리 전달하면서 초기 피드백을 받고 퇴고를 했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다음과 같다. 1차 퇴고(초고 집필 중 1차 퇴고) > (Google Doc으로 초고 전달) > 2차 퇴고(한글 파일) > 3차 퇴고(책처럼 편집한 본) > 4차 퇴고(PDF 본, 모든 챕터 제목 등 확정한 버전) > 5차 퇴고(프린트만 하면 책이 될 거의 최종본)
책을 쓰기 전에 가장 큰 걱정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 “내가 책을 쓸 자격이 있을까?”, 둘째, “A4용지 최소 120페이지는 필요하다는데 내가 그걸 채울 수 있을까?”였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120페이지는 채웠다. 억지로 채운 것도 아니다. 쓰다보니 채워졌다. 하지만 집필 초기에는 여전히 자신이 없었고 편집자께 ‘100 페이지도 겨우 나올 것 같다’는 엄살을 부렸다. 누구나 책을 쓰기 전에 목차부터 생각하겠지만 이 ‘목차’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잡을 수 있느냐에 따라 분량에 대한 추정의 정확도 여부가 달라질 것이다. 초기부터 목차가 세부적이고 구체적으로 나올 수 있다면 분량에 대한 추정은 쉬워진다.
초기
처음에는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뼈대를 탄탄히 하기 위해 목차를 최대한 자세히 써봤지만 ‘리서치’를 해봐야 가닥이 잡힐 것 같은 내용들도 있었다. 그런 점들은 실제 글을 써가면서 리서치를 병행하며 잡아나갔다.
첫 챕터를 일단 써보는 게 도움이 되었다. A4 용지 1장에 몇 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지,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등에 대한 감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편집자로부터 피드백도 최대한 일찍 받으려 했다. 글이 경직되어 있다는 피드백을 들었다. ‘책’을 쓴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나보다. 이후 독자들이 가깝게 느낄 만한 예시를 최대한 많이 넣어보려 했다.
중기
분량에 대한 압박이 시작되었다. 7개 챕터 중 챕터 3, 4, 5 부분이 책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었다. 여기서 많이 ‘뽑아야’ 하는데 ‘뽑아낼 수 있을까’에 대한 압박감이 많았다. 그리고 위에서 얘기한 것과 같이 젊은 독자들이 읽기에 글이 경직되어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와 같은 ‘형식’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하였다.
말기
중요한 챕터들을 다 집필하고 이제 마무리와 1차 퇴고를 해야 했다. 분량에 대한 부담도 없어졌다. 그런데 이 시점에 갑자기 내 글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내가 쓴 것만 다 잘 지켜도 신급의 직장인이 될 것 같았다. 다듬을수록 부족함도 계속 느꼈다. 편집자께도 이런 부분을 열어놓고 얘기했고 아내 및 가까운 분들께도 솔직히 털어놓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다시 자신감을 되찾았다. 글 잘 쓴다는 유시민 작가가 쓴 글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것이다. 내가 쓴 글이 전 국민에게 똑같이 다가갈 것이라는 생각은 안한다. 조언 및 참고가 필요한 사람이 내 책을 읽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나는 내 몫을 다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기타
초기에는 ‘퇴근하고 하루 한 장만 집필하면 5개월이면 끝나네?’와 같이 굉장히 낙관적으로 미래를 봤다. 하지만 직장인이면서 아이의 아빠이기도 한 저자(나..)가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아이를 재우고 밤 10시부터 집필을 한다면, 과연 저런 습관을 쉽게 들일 수 있을까? 택도 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주말로 집필시간을 옮겼다.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 점심 먹을 때까지 글을 쓰고 아이와 놀고 하루를 보내고 저녁부터 다시 집필을 했다.
출판까지 ‘장기전’으로 보고 운동도 꾸준히 하며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 본격적인 집필을 시작한 얼마 후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럽까지 퍼졌다. IT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3월 초부터 계속 재택 근무를 했다. 작고 추운 방에서 낮에는 일하고 밤이나 주말에 글을 썼다. 일주일에 3-4번은 아이 재우고 밤에 밖에서 조깅을 했다. 체력을 끌어올리고 체형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일 뿐더러, 집필 중 잘 풀리지 않는 부분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이지만 잘 짜여진 목차가 정말 중요하다. 처음 아웃라인을 짤 때부터 최대한 세분화하여 목차를 정리해놓는 것이 (1) 책 전체(논리)의 흐름을 잡는데 중요하며 (2) 집필에 소요되는 시간 및 분량을 미리 추정할 수 있다.
세부적인 목차로 뼈대를 세우고 거기 살을 계속 붙이는 식으로 집필을 진행했다. 본문 블록(예, 한 소챕터 내의 내용)들은 기본적으로는 아래와 같은 흐름으로 적어 나갔다. 가벼운 리서치 후에 생각의 가닥을 잡고 기본적인 논리를 본문에 풀어내고 그 이후 계속 조금씩 살을 붙여나간다. 이해를 돕기 위한 예시나 그래프를 추가하고 세부 내용을 위한 추가적인 자료 조사도 한다. 글을 풀어낸 방법(단순 산문식이 맞는지, 대화식으로 표현할지, 불렛포인트로 할지, 그래프를 넣을 지, 소제목 등을 더 세분화할 지, 앞/뒷 부분에 요약본을 넣을 지 등)이 최선의 방법인지 계속적으로 의심해 보고 (독자들이 내가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제대로 소화하고 이해할 수 있을지 독자의 기준에서 생각해본다) 논리적으로 앞뒤 이상이 없는지 계속 확인해 본다.
“일단 내용 대충 채워놓고 나중에 퇴고하면서 정리해야지”와 같은 방식은 오히려 독이 되었다. 나중에 되돌아봤을 때 흐름이 이상한 글이 참 많았다. 근데 일단 다 써놓고 보면 이미 생각했던 내용에 내 사고가 고착될 가능성이 높아 퇴고가 힘들어진다.
“내가 책을 낼 자격이 있을까?”에 대한 고민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 “내가 한 경험들이 작고 사소한 것 같아도 누군가에게는 경험해보지 못한 경험이고 좋은 참고/배움이 될 수도 있어. 지금 내가 있는 자리, 내가 경험하고 있는 것을 ‘바라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 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거야.”
중간중간 글이 안 써지고 권태(?)가 올 때 ‘내가 이 책을 집필하려는 목적’, 즉 북극성/나침반같은 그것을 나에게 계속 리마인드할 필요가 있다. 나에게 그것은 (바로 위에 적은) ‘나의 특별한 경험과 깨달음을 독자들에게 공유하여 그 분들이 조직 생활을 하거나 새로운 도전을 할 때 도움이 되고 싶다’라는 것이었다. 집필 후반으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예시’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특히 그것이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이라면 더욱 좋다.
맞춤법에 대한 중요성은 열 번 강조해도 모자라다. (사실 이 블로그 글에서도 맞춤법 틀린 부분이 많을 것이다) 애매한 부분은 부산대 맞춤법 검사기와 같은 툴을 사용해서 검사를 했고,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의 질문/답변 게시판도 참고를 많이 했다.
책을 쓰면서 “내가 지난 몇 년간 생각보다 많이 고민하고 많이 경험했구나. 책 한권 쓸 정도면 나중에 정말 이걸로 강의해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고 사업을 운영해 가시는 분들은 다 노하우가 있다. 보통 ‘내공’이라 얘기하는 것들 말이다. 다만 그것을 생각과 글로 풀어내는 것은 글쓰기 훈련이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책 한 권의 집필을 마치고 출판까지 가는 과정을 직접 경험해보니, (책의 질과 재미를 떠나) 모든 작가분들이 존경스러워졌다. 그 16,000원 짜리 책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그 사람이 경험하고 고민한 것들의 액기스가 들어있다. 책값이 비싼 것이 아니다.
목차, 개요와 리서치에 집필 시간의 상당 부분을 할애할 것이다. 단순히 소챕터까지의 목차 수준이 아니고 소챕터 내의 본문에 들어갈 논리까지 bullet point 형식으로라도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정리해놓고 본문을 쓰기 시작할 것이다.
책 정가의 10% 수준이다. 첫 출판이기 때문에 10%가 정당한 수준인지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했고 인터넷 검색도 해봤다. 일반적인 인세 수준인 것 같다. ‘초보 작가’로서는 괜찮은 편이라고 한 분도 있었다.
한국에 계신 분들은 이 인세에서 굉장히 작은 수준의 세금만 낸다. 3.3%(3% 소득세, 0.3% 주민세). 나의 경우는 해외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네덜란드-한국 간 세금 조약에 따라 이것보다 높은 세금을 내게 되었다.
첫 인세는 3개월 만에 정산을 받았다. 선인세(출판 전 미리 받는 인세)를 제외한 금액을 정산받았다. 그 후는 반년에 한 번씩 정산을 한다. 이는 출판사와의 계약에 따라 다를 것이다.
구체적인 금액은 공개하지 않겠다. 돈을 많이 벌려고 시작한 집필은 아니었기 때문에 첫 3개월의 인세 수준에 희비가 왔다갔다 하진 않았다.
이 수준으로 ‘전업 작가’를 하려면 (1) 매년 한 권씩 책을 출판하고, (2) 복수의 책들에 대한 인세가 쌓여야만 먹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들었다. 물론 책이 많이 팔리면 얘기는 달라지겠고 저자의 인지도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날 것이다.
참고로 나의 경우 책을 출판하고 3개월 되기 전에 출판사 기준으로 ‘손익 분기점’은 넘었다고 들었다. 출판사 기준에서 대박을 낼 책을 아니었기 때문에 마케팅 비용이 많이 책정되지 않은 점(적은 ‘비용’)도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책 제목은 꼭 미리 생각해보고 출판사에 먼저 제안하라. 나의 경우는 솔직히 글을 다 쓰고도 책 타이틀에 대한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고 출판사의 의견을 어느 정도 따랐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본문 집필만큼 책 제목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해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 책 제목은 마케팅 요소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출판사에서는 ‘팔릴만한’ 제목으로 미는 경우가 많다)
챕터나 소챕터 제목의 경우는 편집자께서 좋은 제안을 많이 해주었다. 나의 경우는 나보다 젊어 보이는 편집자께서(사실 얼굴 한 번 못 뵀다) 젊은 독자들에게 쉽게 읽힐 수 있는 표현들을 제안해주셔서, 더 좋은 이름으로 챕터/소챕터의 타이틀을 변경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6개월 단위의 정산이 답답해서 ‘정산은 늦어도 좋지만 데이터(판매량)를 더 자주 확인할 수 있겠냐’고 출판사에 물어봤다. 내 책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언제 어디서 내 책이 팔리는 지 알고 싶었다. 답변은 ‘주기적인 업데이트는 힘들고 필요하면 담당 편집자를 통해 요청을 달라’는 것이었다. 편집자와의 대화 및 인터넷 검색을 통해 배운 점은, 출판 산업은 여전히 옛 시스템에 갇혀 있다는 점이었다. 내 책이 어디서 얼마나 팔렸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확인할 수 없다. 출판사마다 유통망마다 서로 다른 시스템을 사용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해는 하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legacy함에 답답함도 많이 느꼈다. (예전에 쿠팡에서 외부 은행 및 통신사들과 일했을 때 이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